인권이라고..??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고3인 나는 책과 서류로 뒤덮인 한 책상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6개월 전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는 사무실보다는 농성장에서 파카를 껴입고 보낸 터라 이번 여름은 편하기 그지없다. 이제 두 번째, 인권운동 사랑방에서 자원활동을 하느라 오늘도 내 눈과 손은 피로를 모른다. 인터넷 상의 번역 일로 시작된 사랑방과의 인연은 갈수록 그 의미와 깊이가 더해가고 있다. 살인적인 외고 일정에 치여 잊어버리고 산 시간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이나마 더 참여하고 싶게 만드는 게 사랑방이었다. 고등학생이, 그것도 외고에 다니는 학생이 방학 때 공부는 안하고 뭐하냐고 사람들이 묻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주저 않고 답한다. 공부보다 더 보람찬 배움이 될 것을 확신하기에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고.
사실 다른 자원활동가들보다 짧은 기간 동안 일하고, 또 고등학생이라는 제약이 있어서 민폐나 끼치지 않을까 마음 한 구석에 항상 불안감이 서려있었다. 더군다나 자원활동을 하러 와 보니 내 나이 또래에도 나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인권활동을 해온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방학 때 찔끔 활동하고 다시 공부하러 떠나 버리는 나로서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불편한 마음이 항상 나를 옥죄어 오는 상황에서 나는 주어진 시간 내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매사에 임했다.
지난 2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농성이라는 걸 해 보았다. 아버지와 함께 농성장을 찾았는데 농성 중인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있다 못해 무거웠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인사를 건네고 농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머나먼 외국에서 같은 한국인을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 그런 반가움이 그들의 얼굴에 묻어났다. TV에서만 보던 결의에 찬 얼굴들이 이렇게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다니, 놀라우면서도 고마웠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같이 농성장에 앉아서, 또는 선전전을 하면서 내 짧은 인생동안 아직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정의로운 목표를 위해서 함께 뭉쳐서 일하는 사랑방 사람들의 모습이 갑자기 멋있어 보였고, 잠깐이나마 그 일행의 한 사람으로서 그 추운 곳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게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따뜻한 방에서 편안히 책 속에 파묻혀 있는 것보다 값진 경험인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올해 8월, 다시 찾은 사무실에서는 그 때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 지금, 사랑방 사람들 또한 무척 바빠 보인다. 이번에는 주로 사무실에서 사무적인 일들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매일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건 역시 아니었다. 하루는 사랑방에서 참여하는 기륭전자 문제와 관련 기자회견에 따라 갔다. 국회 앞에서 현수막을 놓고 진행된 이 기자회견장에도 어김없이 경찰이 찾아왔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비슷한 형식의 기자회견 때는 경고에 그쳤던 경찰이 이번에는 전경들을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횡단보도를 막고 서있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아예 기자회견 일동을 둘러싸버렸다. “밀어!” “아무도 못 나가게 막아버려!” 이런 무서운 명령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다소 경직된 자세로 기자회견을 지켜봐야 했다. 결국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경험이 또 하나 늘었다. 국회의원을 향해 강렬한 말들을 내뱉는 인권단체 사람들과, 이들보다 더 긴장한 듯 한 젊은 전경들의 표정을 번갈아 보며 나는 신문에서만 보던 요즘 사회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다. 그리고 더욱 성숙한 가치관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저 공부 잘해서 출세하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의 눈을 확 뜨게 해준 사랑방. 사회적 참여에 적극적이신 아버지의 정신이 이제야 내 몸속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같다. 다들 출세에 눈이 멀어가는 요즘, 그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외고에 서있는 나를 어려운 사람들을 걱정하고 그들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사회 현실을 비판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인권운동사랑방에 항상 감사한다. 자원활동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지만 이번에도 끝은 결코 아니다. 더 의미 깊은 생각과 활동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걸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또 다음을 기약한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