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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삶의 장소에 대한 권리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넘어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넘어서
미류

4월이었다. ‘나무그늘’이라는 마포구의 마을 카페에 갔다가 “강제퇴거금지법 제정하라”는 제목의 서명용지를 마주쳤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특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늘 서명을 부탁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강제퇴거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누가 듣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말하던 것들에 메아리가 들린 느낌이랄까, 새로운 노래가 번져나가는 느낌이랄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면, 그건 반갑고 즐거운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누군가는 강제퇴거를 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말일 테니.

카페 ‘그’의 사연

서명용지에 적힌 카페 ‘그’를 찾아갔다. 카페 ‘그’는 강서구 방화동에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서 얘기하기에는 딱 적당한 크기의 커피 가게였다. 카페 ‘그’는 2010년 8월말에 영업을 시작했다. 인테리어와 커피 볶는 기계 등 3천여 만 원을 투자해 시작했다고 한다. 건물 주인이 나가라고 한 것은 2011년 5월, 영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때였다.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며 두 달 안에 나가라고 했단다. 카페 ‘그’는 놀랐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가게를 나가라는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정말 놀랐던 것은 법이 세입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이런 경우 나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가 최소 5년은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계약 갱신 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10조 1항 단서는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려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구청을 찾아가니 ‘민사 문제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건물주가 소송을 걸어 법원에도 갔지만 법원은 법이 그렇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카페 ‘그’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임대차‘보호’라는 이름의 배제

힙합 그룹 리쌍 ‘덕분’인지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곧잘 나오고 있다. 리쌍이 건물을 샀고 1층에서 장사하던 세입자를 내보내려고 했는데 세입자가 항의를 하면서 언론에 오르내리게 됐다. 리쌍도 사실을 해명하겠다며 나섰다. 리쌍으로서는 억울한 심정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법대로 한 건데, 자기들보다 더 막무가내인 건물주들도 있는데,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더 지탄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대로’ 했는데 누군가 삶의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면, 그 ‘법’이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있다. 그런데 이 법의 ‘보호’ 수준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주택은 2년까지, 상가는 5년까지 점유 기간이 보장되지만 그조차도 각종 제한 조치나 예외 조항이 있어 건물주의 나가라는 요구에 세입자가 대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개발 사업에서는 토지 및 건물 소유주들이 조합을 만들어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세입자들이 나가야 할 의무가 생긴다. 법은 ‘보호’라고 하지만, 세입자의 권리는 배제되고 있다.

세입자가 퇴거에 응하지 않으면, 건물주는 법원에 판결을 구한다. 명도소송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법원은 뭘 따져 묻지 않는다. 카페 ‘그’의 명도소송에서도 법원은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는 의사가 법으로 보장된 것이라고 오히려 인정해줬다. 각종 개발 사업에서도 그것이 바람직한 개발 사업인지 묻지 않는다. 명도소송에서 세입자의 권리가 보장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법부는 퇴거가 정당한지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퇴거를 정당화하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 역시 자신의 관할 행정 구역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민사’상의 문제라는 이유로 팔짱만 끼고 있어 사실상 건물주가 막대한 권한을 승인받게 되는 상황이다.

임대차보호 이전에 권리를 다시 구성해야

이탈리아는 세입자에게 최소 4년의 기간을 보장하고 세입자가 원할 경우 다시 4년을 더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집주인이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는 조건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6개월의 기간을 보장해야 하고, 만약 65세 이상의 노인이 있거나 세입자가 실업 상태일 때에는 18개월까지 거주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퇴거를 요구할 때에는 법원을 통해 권한을 구하도록 한다. 그리고 법원은 세입자에게 퇴거를 요구할 만한 사유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본다.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고 주장하더라도, 재건축을 해야 할 정도로 건물이 낡았는지, 또 다른 재건축의 필요성이 있는지 검토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세입자의 점유권을 보장한다.

임대차계약기간을 얼마나 보장하는 것이 적절한지, 임대료는 어느 정도까지 제한하거나 규제하는 것이 적절한지, 이런 것들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집이나 건물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거주하고 영업하기 위한 점유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은 모든 나라가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인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꾸려 나가는 집이나 가게는, 인권의 장소다. 어떤 건물을 소유했다는 사실이 다른 누군가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리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가 모두 절대시하는 ‘재산권’은 인권과 겨루는 권리가 아니다.

재산권은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온 권리이며 지금도 구성 중이다. 재산권이 신성불가침의 원리인 것처럼 다루며 국가는 재산권의 수호가 자신의 가장 큰 임무인 것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각종 국책사업들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 재산권이 쉽게 무시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이주해야 했던 6만 여 명의 농민들, 평택 미군기지 확장으로 이주해야 했던 수백 명의 농민들이 그렇게 삶터를 잃었다. ‘민사’의 문제라고 간주되는 개발사업도 사실 다르지 않다. 재산권을 존중하는 것은 언제나 더 가진 자들의 재산을, 그들이 하고자 하는 사업을 옹호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삶의 장소

카페 ‘그’는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서명을 받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강제퇴거금지법안에 대한 검토의견서의 핵심 내용은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 ‘국책사업 추진의 어려움’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 강제퇴거라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발생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카페 ‘그’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개정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이유도 그것이다. 삶의 장소에서 누구도 함부로 쫓겨나서는 안 된다는 인권의 기본적 원칙을 세우지 않고서야 언제든 문제는 다른 양상으로 반복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갈등이나 충돌 이상의 문제다. 누군가에게는 건물이 등기부등본에 기록된 재산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술로서의 건축디자인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이정표이기도 할 테고, 친구나 애인과 만나거나 헤어졌던 기억이 담긴 장소이기도 할 테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도 정작 그 곳에 붙박고 사는 사람들의 권리는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그만큼 ‘사람’을 놓치거나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삶의 장소에 대한 권리가 이야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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