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물건이라도 소지자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동일한 표현물이라도 소지한 사람에 따라서 이적성의 유무가 판단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거듭되어, 재판부가 사람의 내심을 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 항소3부(재판장 변동걸 부장판사)는 30일 이적표현물 소지혐의로 기소된 노태훈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내린 원심판결을 재확인했다.
출소장기수들의 글이 실려 있는 『빼앗긴 세월을 되찾기 위하여』를 소지한 것이 이적목적이 아니라 단순 소지한 것이라는 항소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이적 목적이 성립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동일한 출판물이 언론기관에도 배포된 것이고 통일원에서 운영하는 북한자료센터에서도 볼 수 있는 등 누구나 북한관련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데도 특정인에게만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것은 자의적 법집행 이라는 피고인의 항소이유에 대해 "야구선수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폭력단원이 야구방망이를 드는 것은 폭력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소지하느냐에 따라 이적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북한이 여전히 위협적 존재이고 어떤 법이든지 그 나라의 독특한 환경에 따르므로 외국에서 국가보안법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영향 받을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노씨는 판결 후 "똑같은 출판물을 소지했는데 소지한 사람에 따라 유무죄가 가려진 셈"이라고 공박하며, 재판부가 그 어떤 수단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내심을 판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씨는 또 "판사가 '야구 선수든 폭력배든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것 자체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재판의 기본원칙도 지키지 않는 것 같다"며 재판부의 판결을 반박하였다. 노씨는 93년 7월 구속되어 같은 해 10월 20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