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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캐시미르 독립운동가의 특별기고 ①

“지구상의 낙원 캐시미르는 인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리우던 캐시미르는 지금은 점령된 도시의 외양을 한 채 주민들은 모두 대피해 있는 상황이다. 거리에 시민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수백에 달하는 기념품 상점들은 물론 일반 상점들까지도 모두 문을 닫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캐시미르인들은 반세기 가까이 ‘정의’를 기다려왔지만 평화적인 문제해결이라는 안일함에 대한 실망감만 얻었을 뿐이다. 이제 남은 건 점령군에 맞서 일어서는 일뿐이다.

캐시미르인들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점령세력의 경솔한 처사로 인해 법과 규칙의 혼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몸부림은 명백한 역사적 공식적 배경에 근거한 것이므로 단순 폭동으로 간주할 수 없다.

지구상의 낙원이라 알려진 캐시미르는 전반적으로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으며 특히, 캐시미르 계곡은 포로수용소를 방불케 하고 있다. 캐시미르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역사적 지정학적 특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캐시미르는 아시아대륙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기스탄․중국․아프카니스탄․인도와 연해 있다. 와칸․아프카니스탄의 협소한 지역에 의해서 캐시미르는 카자흐스탄인 남아시아 정부와 분리된다. 캐시미르는 8만6천평방마일로 벨지움의 3배가 넘고 네덜랜드와 룩셈부르크를 합한 면적이다. 인구는 1천2백만명이다.

1810년 무슬림 루크의 폐지와 식왕조의 등장으로 캐시미르의 문제는 생겨나기 시작했고 영국 동부의 인도회사의 1848년 조약에 따른 전쟁보상금 30만불 요구는 상황을 악화시켰다. 위대한 시인 모호드 아그발은 통탄스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짓밟힌 들판, 짓밟힌 곡식, 짓밟힌 강줄기여!
계곡의 농부들조차 그 영혼을 팔아버렸구나!
헐값에 팔아버린 것들이여!

그러나 끊임없이 거대하게 고개를 내미는 혼란스런 현재의 사태는 1947년 인도 대륙의 분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분리된 두나라가 파키스탄과 인도다.

1947년 6년 계획은 자치권에 대한 국민의 의지에 근거한 분리안을 받아들여 대륙전체의 이념을 존중한 조약의 원칙을 명문화함으로써 당위성을 부여했지만 안타깝게도 캐시미르의 경우엔 이행되지 않았다.

정치적 불안과 캐시미르의 힌두교 지도자의 불순한 의도 속에서 캐시미르인들은 조국의 장래가 다가올 음모 속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걸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국민의 궐기로 인해 1947년 10월25일 그는 시나가를 도망쳤다. 이어 그는 인도정부에 폭동을 진압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응해 27일 캐시미르에 진입한 인도군대는 독립투사들을 총칼로 막았다.


무시라크 와니 캐시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