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는 광복절이고 국경일 인가?
엊그제 8월 15일은 일제 식민 체제에서 벗어난지 52년이 되는 날이었다. 또한 침략주체만 바뀐채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지 52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날을 빛을 되찾은 광복절로 명명하고 국가의 4대 경축일에 하나로 나아가 국경일 중 최고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날이 그렇게 기뻐할 만큼 민족적인가는 의구심이 앞선다. 우리의 힘으로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면서 단순히 핍박에서 해방되었다는 피상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환호만 할 것인가?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쌍하고 한심한 작태는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그저 좋아만 하는 사이에 일제의 자리를 포장만 달리한채 미국이 차지했고 36년 후에 다시 보자던 일본도 각 분야에 재침략을 완수한 지경이다. 일본만화의 폭력․ 잔인성․ 역사교과서의 왜곡기술․ 평화헌법을 전쟁을 인정하는 전쟁헌법으로 개헌 움직임, 전범을 기리는 신사참배 ․위안부문제에 대한 적반하장격 억지 등등 변형된 식민 상태는 여전한데 국경일이라니 누구의 경축일인가?
태극기를 몇 집이나 게양했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언론의 태도는 왜곡된 인식의 표상이다. 정말 아직도 멀었다. 굳이 8․15를 기념하려면 광복절로가 아니라 건국일로 하여야 할 것이다. 반쪽이지만 정통성을 주장한다는 차원에서도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 수립일을 더 경축해야 할 터인데 광복절로 겹쳐 희석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반쪽이기 때문에 자제하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민족정신도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가 빠진지 이미 오래다. 독립운동가는 버림받고 친일 세력들은 훈장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아직 시정되지 않고 있다. 일제에 빌붙어 활개치던 친일 세력들이 이른바 해방 후 잠시 숨죽이다가 이승만과 손잡고 다시 기승을 부렸고 그 후손들이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새로운 형태의 식민상태이다. 일본군 장교로서 독립군에게 총을 겨눴던 자가 대통령을 20여 년 가까이 하였고 그에 대한 향수가 전국을 휩쓸고 있는 지금 우리는 나라를 잃은지 이미 오래다.
해방의 기쁨보다는 분단의 슬픔이 현재진행형이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사회불안 조성으로 왜곡되고 아직도 원천봉쇄로 대응해야 하는 현실이다. 한쪽은 기아 선상에서 한쪽은 부정부패 선상에서 정신 못 차리고 표류하고 있다. 남북의 집권자들은 민족적 양심을 회복하여야 한다. 집권에 단맛에 빠져 역사의 매국노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
민족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는 곳곳에 산재한 인권모순의 완전한 해결은 기대할 수 없다. 과거 청산은 역사성에 기반을 두어야한다.
사면제도는 전제시대의 잔재
이번 8․15엔 설로 끝났지만 전두환․노태우 씨에 대한 사면설은 심심하면 터져 나온다. 왕이 전권을 행사하던 시대에 병주고 약주던 식의 사면제도가 민주시대에도 버젓이 살아있다니 어처구니없는 사례 중 또 하나이다.
전두환․ 노태우씨 두 사람이 우리의 80년대를 유린한 죄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들이 휘두른 폭력의 후유증으로 오늘도 눈물을 주체할 수없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잊지 말자고 자진증언하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가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이다. 이 단체는 피해자 입장에서 최초로 백서를 발견하여 전․노의 인권유린을 증언하고 있다. 7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백서(「80년 5월의 민주언론」)는 언론에 국한된 것이지만 전․노의 폭력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다른 단체들도 시대적인 증언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는 전․노 사면설의 원천봉쇄와 연결되는 것이다. 전․노 사면은 국민의 가슴에 못을 하나 더 박는 셈이다.
대통령을 지냈으니 그만큼 했으면 됐다는 값싼 인정론은 아직도 민주와 인권의 참된 뜻을 모르거나 왜곡하려는 것이다. 오히려 일반 잡범들보다 더욱 철저한 형집행이 요구된다. 그들은 더 이상 대통령도 아니고 그 누구보다도 악랄했던 범죄자였을 뿐이다. 우리 헌정사에 제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왜곡된 동정심은 불식되어야 한다. 누구의 나라인데 못된 망나니들이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죄과를 덮어서는 안된다. 전․노사면을 운운하는 자체가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행위이다.
김영삼 정권 하에서 구속된 양심수의 숫자가 전․노 시기의 숫자와 맞먹는다니 역사의 발전론을 믿어야할지 의문이다. 문민정부로 포장하여 여론을 왜곡시켜 자행하는 인권유린은 더욱더 악랄하다. 전경과 최루탄 그리고 진압봉과 닭장차가 행사 때마다 지하철 입구나 행사장 주변을 누비는 97년 8월 현재까지 우리에겐 진정한 민주주의나 민주정치, 민주사회 그리고 참다운 인권보장은 없다.
준전시 상태의 남북관계, 준전제군주시대를 연상케 하는 대통령의 전횡, 준식민지로 전락한 우리사회 등등 이러한 결과는 모두 왜곡된 인식의 산물이다. 진정한 과거청산의 경험 없이 진정한 민주사회를 이룩할 수는 없다.
김동한(법과 인권소장, 광주여대 교수)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