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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연재 ⑤ 양심수 사면 어디까지

'창살 없는 감옥생활', 수배·미복권자


양심수는 감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수사기관의 검거망을 피해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는 수배자들. 이미 사회로 복귀한 뒤에도 장기간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미복권자들. 그들 역시 '창살없는 감옥'에 살고 있는 양심수들이다.


국민 아닌 국민, 미복권자

미복권자는 형 선고시 병과된 자격정지로 인해 출소 뒤에도 시민권을 제한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만기출소 또는 사면조치로 석방된 이후 일정기간 동안 선거에 참여할 수 없고, 각종 국가자격시험을 치를 수도 없다. 해외여행은 물론, 국가기관에 봉직할 기회 역시 박탈당한다.

지난 1월 24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이 1천6백여 명의 미복권자 명단을 법무부에 제출했지만, 이는 신고받은 숫자에 불과할 뿐, 현재 전체적인 미복권자의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올해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한 고 원(35) 씨는 오는 99년 10월까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지 못한다. 92년 사노맹 호남위원장이라는 이유로 구속된 뒤 95년 10월 만기출소했지만, 출소와 동시에 자격정지 기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고 씨는 "미복권자가 겪는 고통은 사회적 운신의 폭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재 학업에 전념하고는 있지만, 자격정지가 끝날 때까진 이렇다할 공공연구소에서 일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또한 고 씨는 학교 안에서도 '미복권자'라는 꼬리표를 실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에겐 조교가 될 자격이 없다. 실력이 모자라서, 성품이 모나서가 아니라, 단지 미복권자이기 때문에 공무원에 해당하는 서울대 조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던 이수일(46) 씨도 미복권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88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93년 잔형면제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부과되었던 자격정지 기간은 무려 15년. 앞으로도 10년간 그는 시민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전직 교사였던 이수일 씨는 복직은 커녕, 정상적인 사회활동과 취업마저 어렵다고 한다.

나아가 고 원 씨는 "자격정지가 풀린다 해도 실질적인 권리침해는 계속된다"고 말한다. 보안관찰대상자라는 또 하나의 꼬리표 때문이다. 실제 석방된 양심수 가운데 다수가 보안관찰대상자로서 당국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는데, 그 규모는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양심의 대가로 시작된 수배생활

수배자들이 겪는 고통은 미복권자보다 더할 수밖에 없다. "영안실에서 잘 때가 제일 편안했다"는 박응용(한국타이어 해고자) 씨의 말은 그 고통을 단적으로 표현해준다.

최근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접수한 수배자 명단 가운데 대다수는 한총련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이 수배중인 것은 다름아니라 "한총련을 미탈퇴한 죄" 때문이다. 지난해 한총련에 대한 대대적 검거선풍 속에 대다수의 학생들이 한총련을 탈퇴했지만, 이들은 "양심을 버릴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고통스런 수배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