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특사의 뚜껑이 열렸다. 박노해․백태웅․김낙중․김성만 씨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양심수들이 감옥 밖으로 나왔고, ‘조작된 간첩’이라는 의혹 속에 십수년씩 구금되었던 장기수 가운데에 21명이 풀려났다.
새정부 출범 경축 특사였던 3․13 사면때(74명)보다 석방자 숫자가 많을뿐더러(94명), 석방자들의 면면에 중량감이 느껴지고 그 대상이 최장 19년을 복역한 장기수로부터 한총련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범위도 다양했다.
그러나 이번 8․15특사가 보여준 화려한 외양의 이면에는, ‘양심수’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첫째, ‘준법서약제도’를 통해 남아 있는 양심수들의 ‘양심’을 계속 압박하겠다는 것과 둘째, 풀려난 양심수들에 대해서도 ‘사면취소’ 협박과 ‘보안관찰’을 빌미로 통제와 감시의 족쇄를 거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우용각(41년째 구금) 씨 등 17명에 달하는 초장기수(28년 이상 복역)들을 비롯해 13년이상 구금중인 장기수 39명 가운데 21명을 사면에서 제외했다. 정부는 ‘준법서약’을 하지 않는 한 추가사면을 고려치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이들은 자칫 감옥 안에서 일생을 마칠 수도 있게 됐다.
또한, 정부는 94명의 ‘양심수’를 석방함에 있어 감옥 문만 열었을 뿐, 이들의 발에 채워진 ‘족쇄’는 풀지 않고 있다. 이번에 석방된 양심수들은 전원 가석방 또는 형집행정지 처분에 의해 출소함으로써 언제든 재수감될 수 있는 처지다. 권노갑 씨등 비리사범과 정호용 씨등 헌정파괴범들에 대해선 전원 잔형면제 또는 복권조치를 내림으로써 공민권을 완전히 회복시켜준 데 비하면, ‘양심수’들에게만 유독 ‘혹’을 붙인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이중적 사면조치의 속내는 16일 법무부의 공개 협박을 통해서 곧바로 노골화됐다. 법무부는 16일 “석방된 공안사범이 출소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등 행위를 할 경우 사면조치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법률 위반 행위가 아니라, 법 폐지를 주장하는 표현 행위만으로도 구속하겠다는 법무부의 입장은 역대정권을 능가하는 반인권적 발상이기도 하다. 또한 14일 박상천 법무부장관이 풀려난 양심수들에 대해 ‘보안관찰’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현 정부가 더 이상 인권개선의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정부는 이번 사면이 ‘인권개선’ 의지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대내외 홍보와 정략적 의도에 따른 것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우선 ‘준법서약’이 양심수 석방을 위한 요식절차이며, 그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않겠다던 당초의 설명과 달리, 준법서약서를 쓰면서 국가보안법 반대입장을 밝힌 양심수들은 전원 사면에서 제외했다.
또한 정부는 “정호용 씨등 헌정파괴범을 복권시키는 이유가 주범인 전두환․노태우 씨가 이미 사면․복권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도, 사노맹 사건의 주범 백태웅, 박노해 씨는 석방하면서 현정덕(8년형) 씨를 제외했고, 구미유학생 사건의 김성만 씨 등을 석방하면서 강용주(20년형) 씨는 제외하는 이중적 잣대를 보였다. 결국 유명한 양심수의 석방을 통해 국내외에 ‘사면’ 효과를 극대화하고, 헌정파괴범 석방을 통해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꾀했을 뿐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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