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장애인이 생겨났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는 마산 손가락 절단 사건의 당사자 강정우 군은 이제 손가락이 하나 없는 장애인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이번 사건을 두고 언론은 어려워진 경제여건으로 인해 가족틀 자체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저소득층의 현실이 드러난 것 이라고 논평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론의 이런 논평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손가락 절단’ 사건의 본질
즉 저소득층으로 표현되는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은 경제 위기와는 상관없이 늘 힘든 삶을 살아 왔고, 지금 상태라면 앞으로도 어렵게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 방치돼 있다. 따라서 범죄가 문제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살 수밖에 없는 빈곤층의 처참한 현실에 언론이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언론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번 마산 사건만 해도 그렇다. 필자에게 마산 사건의 충격은 인명경시가 아니라 아버지 강종렬 씨가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면서까지 살려고 발버둥 쳤던 그 눈물겨운 사건의 배경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강종렬 씨는 가난으로 인해 아내가 가출하고 난 뒤 자신은 폐결핵에 걸린 몸으로 공사판을 떠돌다 경제 위기로 인해 일 할 곳이 없어지고, 그래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져 버린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강종렬 씨의 범죄 행위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강종렬 씨가 처참한 현실에 계속 방치돼 있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추론해 보면 우리 사회 빈곤층의 암울한 현실에 새삼 몸서리가 쳐진다.
십중팔구 아들은 고아원에 보내지고 아버지 강종렬 씨는 노숙자로 전락해 거리에서 삶을 마치거나 아니면 양지마을 같은 부랑인 수용시설에 수용돼 인권유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건국 50주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 빈곤층의 암담한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도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뤘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과실은 소외계층에게는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즉 역대 정부는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데 관심 조차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IMF 사태를 맞게 되자 언론에 익히 보도된 대로 살 길이 막막해진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은 거리를 헤메거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고, 심지어는 자살이라는 막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인 비극은 지금처럼 사회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단언컨대 우리나라가 설령 IMF 사태를 벗어난다 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IMF 사태의 한복판에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일은 경제난을 극복하는 것 보다 바로 소외계층에게 관심을 가지고, 소외계층에게 밥 한 끼를 먹여주는 미봉책을 실시하지 말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구체적인 정책마련과 시행이 절실하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왜냐면 위기 때 인권에 기반을 둔 소외계층 정책이 마련되면 위기를 벗어나면 소외계층은 바로 제대로 인간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답게 사는 길
지금 모두들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필자의 관심사인 소외계층 중에서도 더 소외된 이 땅의 장애인들은 최악의 생계 위기를 겪고 있다. 비장애인이 살기 힘들면 장애인이 더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버려지는 장애인들도 늘고 있고 보호 시설마다 장애인들의 수용 의뢰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심각한 것은 구걸하는 장애인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거리를 걷다 보면 구걸하는 장애인들이 많이 늘어나 있는 것을 쉽게 보게 된다.
정말 가슴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는데 장애인들을 생계 위기에서 구해줄 정부의 복지정책은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에는 한계상황에 처한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의 입장을 대변해 줄 변변한 기구나 단체도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소외계층은 고통 속에서 더 진한 상실감을 맛보고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결론은 자명하다. 마산 손가락 절단 사건을 계기로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이 땅에 또 한명의 장애인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 관심을 가지고, 소외계층과 빈곤 계층에 따뜻한 손을 내밀어 맞잡고 소외계층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말이지 가난 때문에 장애인이 생기는 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이태곤 (월간『함께걸음』편집부장)
- 1214호
- 이태곤
- 1998-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