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산업 언제까지나
98년 한해 동안에만 벌어진 주요한 군사 분쟁이 세계적으로 28건에 달하여 지구상의 포성은 멈추지 않고 있다. 생명 파괴, 가족 해체, 난민 양산 등 전쟁의 폐해는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재원 상실도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95년, 영국의 한 평화단체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 즉 성인 여성과 남성, 어린이를 모두 포함하여 인구 1인당 연간 180달러(한화 약 20만원)를 군비에 사용하고 있는 꼴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최근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가 99년 군비연감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세계의 군비지출은 87년 이후 감소 추세에 있다. 하지만 이는 주로 러시아의 군비지출이 대폭삭감(98년 55%) 된데 기인한 것으로, 전세계 군비지출은 여전히 엄청난 규모로 진행되어 약 7천4백5십억 달러(한화 약 81조9천5백억원)에 달한다.
또 다른 문제는 세계 무기 생산이 소수 선진국에 편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 선진국의 10대 무기생산국이 전세계 무기의 90%를 생산하고 있으며, 그중 미국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그 무기를 사들이는 국가는 제 3세계들로 오늘날 제3세계에는 의사의 숫자보다 8배나 많은 군인들이 첨단무기를 팔에 안고 있다. 인류의 군사비 지출이 세계 인구의 절반이 벌어들인 소득과 맞먹는다는 보고에서 보여지듯 석유산업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이라는 무기 산업에 인류는 귀중한 자원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남북 분단과 대치라는 긴장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선 그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국방부가 발표한 2천년도 국방요구예산(안)은 금년도 국방예산보다 12.1% 증가한 15조4천1백2억원이다. 이는 5천만 국민 1인당 약 30여만원을 한해 군사비에 사용하는 것에 해당한다. 우리 나라는 매년 5조원 가량을 무기 구입에 쓰고 있으며, 한-미 공동작전 때문에 그 80%를 미국에서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방위를 위한 지출은 어찌보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 부정적 요소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적인 노력에는 쉽게 다가서 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미명하의 군비확보가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고, 긴급 수혈이 필요한 사회의 여러 부문을 제쳐두고 피의 산업이라는 무기생산과 구매에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는 오랜 지적으로부터 우리는 분단과 대치를 방패로 '예외'임을 늘 자처하며 거리를 유지해 왔다.
일례로, 99년 3월 1일로 발효에 들어간 국제대인지뢰금지협약은 여전히 먼 세상의 일이다. 지난 26일 충남의 한 민가에서 대인지뢰가 폭발해 9살 소녀가 오른쪽 발목이 잘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여기서 드러나듯 지뢰는 전방지대만이 아니라 후방의 민간인을 위협하고 있다. 국방부는 부산, 울산 등 후방에만 7만5천여개의 발목지뢰가 묻혀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지뢰생산국이자 수출국인 미국과 더불어 대인지뢰금지협약을 무시하고 있는 우리로선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다.
안보는 생명이라며 군대가 뭘 사겠다고 하면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안보'를 이유로 한 철저한 정보 미공개는 국민에게 '피의 산업'을 감시하고 판단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일례로 지난해 감사원이 군 방위력 개선사업에 대한 특감 결과를 발표하면서 '개당 64센트짜리 헬기 부속을 2,317배나 비싸게 도입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국방부는 '사실은 23배'라고 주장하였다. 어느 쪽 얘기를 들어도 고개가 내저어지는 대목이다.
국민 1인당 30만원! 적어도 어떻게 쓰여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머리를 맞대고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의료보험 등에 쓸 수 있기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