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거부로 맞선 작은 학교 통폐합
정부의 무리한 작은 학교 통폐합에 맞서 등교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는 대전의 동명초등학교를 지난 3일 방문했다. <편집자 주>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할 때면 너무 답답해서 눈물이 다 나요. 아이들 문제로 이러고 있는 건데 도리어 아이들이 상처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하고요. 그때마다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해요.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노력으로 학교를 지켰다는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싸워야한다고…”
총회를 마치고 나온 단비 엄마 박영례 씨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풀이 죽어 있었다.
오늘로 끝이길 바랬다. 교육부의 ‘작은 학교 통폐합’ 입장이 쉽사리 바뀔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등교까지 거부한 채 ‘재고’해달라고 하는데, 애들을 보아서라도 한번쯤 다시 생각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교육부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생님들을 집으로 보내 아이들의 등교를 독촉했다. 또 엄마들이 운영하는 교실에 오는 아이를 강제로 학교에 데리고 가 다른 아이들로부터 핀잔을 듣게 하는 등 모두에게 잊지 못할 상처만 남겨줬다.
이러한 교육부의 비교육적인 처사 앞에서 학부모 총회에 모인 엄마들은 다시 한번 등교거부를 결정해야했다. 이번에는 방학 전까지로.
대전광역시 동부 추동에 위치한 동명초등학교는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전망 좋은 곳이다. 지금부터 81년전 마을 주민들이 직접 산에서 해온 나무로 지어진 동명초동학교는 온 마을 사람들의 작품이다. 현재 추동을 중심으로 20km 반경 내에 있는 64명의 아이들이 이 학교의 주인이다. 하지만 동명초등학교의 ‘내일’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학교측은 지난 4월 학부모 간담회를 열더니 ‘학생수가 적으면 사회성이 결여되고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오는 8월 안으로 이 학교를 화남초등학교에 통합시킨다’고 밝혔다. “시내 학교보다 교육 환경이 훨씬 더 좋은데 무슨 소리냐”며 학부모들은 펄쩍 뛰었다. 주민 대부분이 학교 통폐합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냈고 대전과 서울 교육청을 오가며 항의 집회도 열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학부모들은 ‘시골 사는 것이 죄’라 가슴을 치며 최후의 선택, ‘등교거부’를 결정했다.
“학교에 못 간지 열흘 째예요. 선생님도 보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고. 애들이 적어서 우리 학교를 없앤다고 하던데, 너무 싫어요”(장익균, 5학년, 12)
“시내 애들은 우리가 시골에서 왔다고 싫어 할거예요. 그리고 차 타는 것도 싫고요.”(정애영, 3학년, 10)
엄마 선생님들과 자연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학교가 없어지는 게 “싫다”고 입을 모은다.
어느새 열흘 째로 접어든 등교거부운동. 엄마 15명이 자원교사가 돼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마을 교회에서 아이들을 지도한다. 첫날은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해 애를 먹다가 결국 학교통폐합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했다. 교회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났다. 아이들은 간식으로 먹던 옥수수를 얼른 먹고는 반주에 맞춰 ‘앞마을에 순이’를 부른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은 30분을 넘기지 못했다. 등교거부를 방학까지 하기로 한 결정이 알려지면서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서울에서 이사 온 김윤회(34) 씨는 “서울 학교는 경쟁도 심하고 한 반이 50명인데 비해 여기 학교는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어 가족 모두가 만족해왔다”며 “교육부가 주장하는 통합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두 아이의 학부모인 윤상호(목사) 씨도 “시내와 통합되면 아이들은 시골 아이라는 이유로 정신적,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또 거리도 워낙 멀어서 아이들이 차에 시달리게 되고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 때문에 노심초사하게 될 것이다. 외국에선 작은 학교를 선호하는데 유독 우리 나라만 작은 학교를 없애려 하는 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학교 주인들의 학교통폐합 반대 의사는 분명하다. 교육받을 주체를 생각하기 보단 경제논리에 치우쳐 행정부의 입장에서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는 작은 학교 통폐합은 교육 환경 개선은 커녕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