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귀중한 지면에 이 시대, 세상의 한 귀퉁이에 살고 있는 평범하고 힘없는 백성의 모습을, 그 사람들의 풍경을 적고 싶다. 그리고 그 풍경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다. 그들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시대의 사람들이고 아무리 힘없는 백성이지만 그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그 ‘말 한마디’를 하고 싶다.
우리 외할머니는 올해 여든 여섯을 잡수셨다. 성함은 오명순, 택호는 신전댁(新田宅). 우리 외할아버지는 1948년도에 돌아가셨다. 전남 곡성군 석곡면 방죽골에 사셨는데 이른바 ‘여순반란사건’의 와중에 국군 토벌대에 의해 외할머니 말씀으로는 ‘반란군들한테 옥수수 몇 개 건네줬다고’ 빨갱이로 몰려 그 마을 사람 열다섯 명과 함께 한날한시에 마을 앞산으로 반란군 잡아내라고 ‘토끼몰이’를 당하여 그대로 뒤에서 토벌대가 쏜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그때 우리 외할머니, 신전댁은 우리 외삼촌을 임신 중에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 외삼촌은 유복자다. 위로 우리 엄마를 포함하여 딸 셋이 있다. 이후 신전댁은 그야말로 빨갱이 누명 쓰고 죽은 남편으로 인해 ‘찍소리’ 한 번 못하고 혼자서 자식 넷을 키우며 갖은 고생을 하게 된다. 딸 셋은 먹고살기 힘들어 초등학교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채 일찌감치 시집을 보내 버렸고 아들 하나도 겨우 초등학교밖에 가르치지 못하여 지금 오십 줄의 외삼촌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없는 집안의 농사일을 하다가 작두에 손가락을 잘리는 수난을 입었다. 나이 열여섯부터 목공일을 배워 객지를 떠도는 삶을 살고 있다. 외할머니도 아들을 따라 객지를 떠돌다가 고향에 돌아온 지 한 십년 된다. 그 동안에 외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장만하여 부쳐먹던 산비탈 다락논이 ‘일제정리’ 기간에 외할머니가 객지를 떠도느라고 신고를 하지 않아 ‘국가땅’으로 넘어가 버렸다.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국가땅으로 넘어간 것도 모르고 고향에 돌아온 십년 동안 아무 탈없이 농사를 지어먹다가 바로 작년 설 무렵에 장조카뻘 되는 마을 이장으로부터 신전댁 논이 국가땅이라는 소리를 듣고난 외할머니는, 그만 병을 얻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한테 그 땅이 원래부터 신전댁네가 지어먹던 땅이라는, 그러니까 이녁 남편이 마련한 땅이라는 서명을 받아서 군청으로 들고 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해서 우리 할머니, 신전댁은 이녁이 객지를 떠돌면서도 목숨처럼 지니고 다니던 일제시대 때의 땅문서를 공무원에게 보여줬지만 그 땅문서에 외할아버지 이름이 창씨개명된 일본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그 또한 증명이 될 수 없다는 거였다. 외할버지 성함이 ‘마준하’고 창씨개명된 이름이 ‘장곡천’인데 마준하와 장곡천이 같은 인물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갖다 줘야 된다는 것이다. 족보를 뒤져 결국 마준하가 장곡천임을 증명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동안에 팔순의 우리 할머니가 공무원들로부터 받은 그 비인간적인 태도를 생각하면 정말 부아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필자 소개>
소설가 공선옥 씨는 1963년생으로 91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중편 「씨앗불」을 발표하며 작품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작품으로는 「목마른 계절」 「우리 생애의 꽃」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 「피어라 수선화」등이 있습니다. 공선옥 씨는 앞으로도 일반적인 시평 형식과 달리 생활 주변의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시평을 맡아 줄 계획입니다.
공선옥(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