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인권문헌읽기

[인권문헌읽기] "이곳에 저항할 다른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나는 저항할 겁니다." - 마더 존스(Mother Jones)의 연설(1912)

슬픔 위에 슬픔이 분노 위에 분노가 계속 포개지는 날들이다. 한 겨울 고 최종범의 영정을 들고 삼성본관을 찾았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이번엔 뙤약볕 아래 고 염호석의 영정을 들고 한 달 가까이 노숙을 하고 있다. 노동권도 뺏겼고 그에 항의해 죽어간 동료의 시신마저 도둑질 맞았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입막음과 타작이 가해지고 유가족들은 서명지를 들고 거리를 헤맨다. 밀양 할매들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알몸이 되면서 질질 끌려 내려와 통곡을 한다. 이게 다 얼마 전에 표 받아간 정치권과 세금 내서 키운 공권력과 모든 곳에 군림하는 ‘초일류기업’이 만든 일들이다.

‘우리는 국민도 시민도 아니냐’는 울부짖음을 내동댕이치며 유유히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 앞에서 인권은 조롱거리다. 그들은 공민권, 정치권, 사회권이란 인권의 표지들을 다 잡아뜯어냈다. 표현의 자유도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도, 정치권력의 행사에 참여할 권리도, 경제적 복지와 안전에 대한 권리도 찢겨져 나뒹군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되돌려줄 건 조롱이 아니라 엄중한 비판이며 저항이라 말하는 할머니가 있다.

처참한 오늘, 우리를 응원해줄 것 같은 그 할머니를 모셔봤다. 1830년에 태어나고 미국에서 활동했던 할머니인데, 나는 오늘 그녀의 얘기를 ‘밀양 할매들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하는 말’로 바꿔 읽어봤다.

얘기의 주인공은 마더 존스(Mother Jones)다. 본명은 따로 있지만, ‘미국 노동운동의 어머니’란 뜻으로 ‘마더 존스’라 불렸다. 미국 상원에서 그녀를 “모든 선동가들의 할머니”라고 조롱하자 그녀는 언젠가는 “모든 선동가들의 증조할머니”로 불리고 싶다고 받아쳤다 한다. 마더 존스는 쉰이 넘은 나이에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밀양 할매들 말마따나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이다.

[사진 설명] 191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몽고메리에서 열린 노동자 집회의 '마더 존스' 출처:West Virginia University Libraries

▲ [사진 설명] 191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몽고메리에서 열린 노동자 집회의 '마더 존스' 출처:West Virginia University Libraries


그녀의 젊은 시절은 굶주림과 노동과 질병으로 채워졌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으나 대기근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멤피스에서 교사와 재봉일을 하다 철공 노동자를 만나 결혼해 네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황열병이 도시를 덮쳤고 부자들이 도시를 탈출할 때 가난한 노동자들은 병으로 쓰러져갔다. 그녀 또한 남편과 아이들을 그 병으로 모두 잃었다. 그 후 시카고로 이주한 그녀는 부잣집의 재봉일로 생계를 꾸렸다. 거기선 대화재가 일어났고 그녀는 홈리스가 됐다. 이런 비극들을 겪으며 그녀는 가난한 자에게 전가되는 사회적 위험과 불의를 온 몸으로 느꼈다. 결국 그녀는 노동자야말로 “돈으로 된 문명”을 “미래 세대를 위한 더 고귀한 문명”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창하는 운동가가 됐다.

그녀는 실업자 운동에 결합한 것을 시작으로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부정의를 까발리고 정치권에 일자리 창출을 요구했다. 이 운동은 미국 철도 조합 그리고 광부 조합과 연결됐다. 그녀가 ‘마더 존스’란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잘못 기소돼 교수형에 처하게 된 철도조합의 젊은 활동가 구명을 위한 활동 때문이었다. 온갖 곳을 쫓아다니고 항의한 활동 끝에 결국 그 활동가의 생명을 구했다. 아동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당시 처참했던 아동노동의 문제를 공론화한 것도 ‘마더 존스’의 이름을 다진 활동이었다.

노동운동 조직화와 파업으로 점철된 삶에서 그녀는 숱하게 총검의 위협에 맞서고 금지명령을 어기고 구속되고 강제 이송됐다. 그런 일을 하면서 그녀는 노동조합에서 아무런 공적 지위를 갖지 않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노동자의 편에서 싸웠다. 그런 그녀가 주창한 것은 지도자가 아닌 평 조합원들의 운동을 강조한 민주적 노동조합주의였다. 그녀는 그런 노동조합운동의 기초로서 가족과 지역사회 조직화를 내세웠다. 여성들에게 남성으로부터 독립적인 조직화를 권했고 노동조합운동에서 백인지상주의를 비난하며 인종적‧민족적 분열에 다리를 놓았다.

오늘 읽어 볼 인권문헌은 마더 존스가 1912년(그러니까 80세가 넘어서였을 것이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파업 광부들을 지지하기 위한 집회들에서 한 연설이다.

“이곳에 저항할 다른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나는 저항할 겁니다.” 이 말은 “밀양 싸움은 끝이 아니다. … 연대의 손길을 놓지 않는 ‘밀양 송전탑 시즌2’를 열어젖힐 것”이라는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의 말로 들린다. ‘침실 담당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우리는 천국에서도 잠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란 마더 존스의 농담은 삼성노동자들의 노동이 곧 삼성 자본을 만들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 같다. 자기 안에 있는 노동을 보지 못하는 삼성을 향해 “그들은 노예 제도의 지속을 원한다”고 비판한다. “여러분이 내건 기치는 역사입니다”라는 말은 땡볕 또는 폭우 속에서 “독재기업 삼성을 바꾸자! 이 사회를 바꾸자!”는 함성을 멈추지 않는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들을 향한 응원으로 들린다.

“여러분, 이 싸움은 계속됩니다. … 나는 이 생애를 통해 오직 한 번의 여행을 합니다. 여러분은 이 생애를 통해 오직 한 번의 여행을 합니다. 우리 모두 여기 있는 동안 인간애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시다.” 이 말은 밀양 할매들이 삼성 노동자들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하고픈 말로 들린다. ‘우리 여기 있어요. 우리는 돈이 아니라 인간애를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로 화답할 때 우리는 틀림없이 자유인일 것이다.

<파업 광부들에게 한 연설, 1912)
여기 오늘밤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이 나라에 쓸어 버려야할 질병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사람들은 이 질병을 참을성 있게 앓아왔습니다. 모욕과 억압과 폭력행위를 견뎌왔습니다. 당국에 호소했고 법원에 호소했고 법무장관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매번 거절당했고 무시 받았습니다. 우리의 소리는 들을 리가 없는 것이고, 기업의 소리는 들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 당신들의 공무원들이 당신들의 지성을 대놓고 모욕하는 걸 봅니까? 그들은 당신들을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으로 간주합니다. … 묻겠습니다. 당신들의 공무원들이 이 나라의 시민들을 위하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할까요? 아니면 자기네 조건을 위하는 걸까요?

… 당신들, 남성과 여성들이 함께 선다면, 질병의 원인을 찾아 뿌리부터 뽑아버린다면, 나는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의사당을 손에 넣으세요. 그 기반은 당신들 거쟎아요. 당신들이 의사당을 지었어요. 안그래요? 당신들이 공무원에게 월급을 줬어요. 안그래요? 당신들이 그 기반을 위해 돈을 냈어요. 안그래요? 그렇다면, 그건 누구에게 속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왜 무장세력들이 당신들을 쫓아내는 겁니까? 여러분은 최면에 걸렸었습니다. 문제가 뭐냐 하면 그들은 노예 제도의 지속을 원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당신들을 들여다보는 안경을 꼈습니다. 그들은 당신들에게 최면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인들이 당신들에게 죽으면 천국에서 침대를 얻을 거란 말을 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침실 담당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우리는 침대를 얻지 못할 겁니다.

… 12년 전 쯤에 내가 여기 왔을 때 여러분은 11시간 내지 12시간을 일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가 원하는 대로 가격을 매긴 석탄을 여러분에게 부과했습니다. 우리는 싸웠고 석탄 가격을 두 배로 만들었고 시간은 9시간으로 줄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당시에 좋은 조합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들이 도처에서 하는 것처럼 산업 노조 속에서 그걸 했고, 노동자를 위해 일하려는 사람 대신에 영광을 원하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나는 그런 걸 멈추려 합니다. 우리는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를 조직하려 한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단체협약을 위한 대표자 중심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기층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노동운동, 한 기업만이 아니라 지역을, 전 사회를 조직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말이다.)

… 여러분, 이 싸움은 계속됩니다. … 나는 이 생애를 통해 오직 한 번의 여행을 합니다. 여러분은 이 생애를 통해 오직 한 번의 여행을 합니다. 우리 모두 여기 있는 동안 인간애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시다. … 어느 국회의원이 “마더 존스, 사는 곳이 어디죠?”라 물었을 때, 나는 “미국입니다.”라고 했고, 그는 “미국 어디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노동자들이 강도에 맞서 싸우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사는 곳입니다.”라 했습니다.

… 여러분은 노예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인간 자유의 획기적인 사건으로부터 사건으로 전진, 전진, 전진할 겁니다. 여러분은 새 날의 인간처럼 높아질 것이고 노예제는 치명상을 입고 죽을 겁니다.

<웨스트 버지니아 주 찰스톤 의사당 계단에서의 연설, 1912>

오랜 세월 역사에 남을 그 날입니다. 그 날이 뭐냐고요? 억압받은 사람들이 주인 계급에 맞서 일어난 날을 말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타당한 일은 왜 이 사람들이 장비를 내려놓았는지, 왜 의사당을 찾았는지 그 목적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 이 사업의 소유자들은 무장한 경비들을 고용하고 있고, 그들의 무기는 여기 사는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겁먹게 하고 위험에 빠뜨릴 목적으로 사용되고 … 그 경비들은 잔인하고 시민들을 향한 그들의 행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들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부인하고 법 절차 없이 시민들을 때리고 다치게 하고 붙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민들이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논의할 목적으로 평화롭게 집회할 수 있는 걸 부인하고 있습니다. … 그 경비들이 공공 도로와 공공장소를 점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일반복지에 위험합니다. 그런 경비들을 유지하면서 기업들 편에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의 최상의 이익을 해치며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명예와 존엄에 반하는 폭거입니다.

… 공공의 안녕과 보편 복지에 관심을 가지며, 법과 질서와 평화가 준수돼야 한다고 믿으며, 형제애의 정신과 정의와 자유가 모든 곳에 존재해야 한다고 여기는 시민으로서 우리는 저런 경비들을 무장해제하고 헌법이 보장한 모든 권리를 시민들에게 회복시키는데 당국이 모든 권한을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 이곳에 저항할 다른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나는 저항할 겁니다. 이 나라의 여성다움은 사업자들이 고용한 다수의 비열하고 지독한 사냥개들에게 억압받고 때려 맞고 침해돼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사람으로 여긴다면 그런 개들을 기르지 않을 겁니다. … 이제, 애완견을 위한 날은 갔습니다. 아이들을 더 고귀하고 더 좋은 남녀로 기르기 위한 날이 왔습니다. … 여러분이 내건 기치는 역사입니다. 그것은 미래세대로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로 전해질 것이고, 노예들이 일어섰다고 얘기할 것이고, 아이들은 틀림없이 자유인일 것입니다. …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