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시' 제5집/ 갈무리/ 1999/ 143쪽
"유일하게 세금 낼 때만은 나도 인간이라는 것을 느낀다/ 국가는 세금고지서만은 차별하지 않고 고루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은행 창구 앞에 돈을 내밀자/ 한달 치의 인간구실값이/ 꽝! 도장 찍힌다 그러나 꼭 한 달/ 한 달만 유효한 생존영수증/ 한달 후에도 내가 인간일지 장담 못한다"
(손현수, 「인정받던 시절에는」중에서)
뼈아픈 노동, 더 뼈아픈 실업의 고통 속에 흔들리는 노동자의 삶을 담은 시집이 나왔다. 『한 노동자가 위험하다』는 노동자로만 이루어진 동인모임 '일과시'가 펴낸 5번째 시집. 93년 1집 『햇살은 누구에게나 따스히 내리지 않았다』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 이들은 이름 그대로 '노동과 삶과 시는 하나'라는 낯익은 진실을 몸소 증명해온 사람들.
'일과시'의 시에는 곧 끊어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연처럼 고단하고 불안한 노동자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변경으로 내몰린 가난한 하층 노동자로서의 시인들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실업의 위협. 기계화, 세계화, 구조조정의 터널을 지나면서 비축된 식량도 무기도 없이 실업의 위협에 내몰린 이들 시인은 자신들이 인간이 아닌 실업자, 영세민, 사회적 부담으로 불리는 현실을 고통스럽게 뱉어낸다. 스스로 더 이상 인간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절규한다. 그래서 '바로 지금' 일만 바라보고 살던 한 노동자가, 그의 가족이, 세상이 위험하다고 외친다.
하지만 시인들은 흔들리는 연을 지탱해줄 연줄을 얼레에 감고 잘게 부서진 희망을 추려모으는 일도 잊지 않는다. 불꺼진 이 땅의 지하도에서 기거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마음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