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가 요란한 정리해고식을 치렀다. 경찰의 과잉출연 속에 시동을 걸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향해 질주하고 또 질주했다. 시민들은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았고, 인권단체들은 익히 알고 있던 인권기준들을 모조리 폐차시키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무기력했다.
계엄을 방불하는 부평역 주변에서 연일 벌어진 사건들은 인권침해라는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난 2월 16일 정리해고 당한 1,750명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그 고통을 위로 받고 구제 받기는커녕 다짜고짜 검문 당하고, 연행 당하고, 얻어터지고, 문을 연 채 경찰 앞에서 용변을 봐야하고, 수갑을 찬 채 가족을 면회하고, 발가벗기우고, 울부짖는 아이와 격리되는 악몽을 겪었다.
노동하고 가족의 생존을 유지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그에 대해 토로할 수 있는 집회와 시위의 권리도 외면 당했다. 철통같은 봉쇄가 이어졌고,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허락된 1인 시위도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경찰에게 더러운 물건처럼 취급당한 그들의 신체는 유린당할 대로 유린당했다. 한마디로 대우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인권침해의 종합전시장에 등장한 다목적 전시물이었다.
대우자동차를 휩쓸고 간 이 폭압은 우리 정부의 인권의식을 발가벗겼을 뿐 아니라, 무력할 대로 무력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눈물이 말라붙을 때까지, 노동자를 때려잡은 경찰의 의기양양한 무용담이 제풀에 수그러질 때까지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질주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칼날을 맞받아칠 정의는 없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경찰과 국가폭력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언론들에 한방 날리자. 김대중 정권이 이제 '정리'됐다고 느낄 틈을 주지 말자. 그들이 우리에게 허락한 법과 인권이란 것의 한계는 뻔하지만 그것으로라도 막가파 경찰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에 빠진 우리들을 다그치자. 불의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고 저항해야 하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자각하자. 김대중 정권은 인권을 입에 올릴 수조차 없는 자신의 본색을 철저히 드러냈다. 이 정권에게 심판과 단죄를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