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광풍’이 공장, 학원, 거리를 휩쓸고 있다. 집권 4년째만 등장해 나라안을 온통 헤집어 놓았던 ‘광폭한 퍼포먼스’가 다시금 시작된 것이다. 91년에는 이른바 ‘분신·유서대필 정국’, 96년에는 이른바 ‘한총련 정국’으로 온 나라를 협박하던 ‘공안세력’이 이번에는 이른바 ‘화염병 정국’을 조성,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을 아예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대우 공권력투입, ’민생공안‘이 주도
지난 2월 20일, 대검공안부(부장 이범관)는 이른바 ‘민생공안’ 원년 방침에 따라 2월 19일 대우자동차에 공권력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20일 인천 산곡동 성당에 경찰기동대가 진입해 양주용 부제 등 성당 관계자와 70여명의 노동자들을 무차별 구타·연행한 이후, 경찰 8천여 명이 부평을 점령, 부평은 ’계엄상태’에 돌입했다.
3월 9일 사상 처음으로 전국 공안검사 120명중 103명이 한자리에 모여 연찬회를 가졌다. 연찬회 주제는 ‘남북관계 변화와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의 공안업무 방향’. 요컨대, “남북관계변화로 인해 좁아진 공안 시장을 구조조정에서 찾겠다는 것”으로, 이를 집약한 구호가 바로 ‘민생공안’이다.
‘민생공안’의 주된 타격대상은 “지역·집단 이기주의적 불법집단행동”으로, 불법집단행동은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 폭력을 동반”하며, 이는 “경제회복을 저해”하므로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진형구 파업유도사건으로 몰매 맞고 숨죽였던 “공안대책협의회를 적극 활성화하겠다”고 천명했다.
3월 14일 한국자유총연맹과 경제5단체가 나서서 “화염병 사용은 사회불안뿐 아니라 국가신인도 하락, 외국인 투자심리 위축 등을 가져와 경제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공안’을 거들고 나섰다.
대검공안부 -> 우익·경제단체 지지에 이어 다음 차례는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3월 23일, 경찰대학 졸업식에서 “화염병과 폭력은 반드시 근절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신종화염병 빌미로 ‘공안작전’ 시작
울고 싶은 공안세력의 뺨을 때려준 것은 이른바 ‘신종화염병’. 민주노총 홈페이지 열린마당에 신원미상의 이용자가 올린 ‘폭발성 신종 화염병 제조법’을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가 적발, 추적에 나서고 ‘공안당국’은 차곡차곡 준비해왔던 ‘작전’을 현실화시켰다.
우선 경찰이 ‘신종화염병’을 만들어 카메라 앞에서 ‘폭발쇼’를 선보이고, 언제나 그렇듯 언론이 왕왕대자 검·경은 온갖 ‘겁나는’ 대책을 다 들고 나왔다. ‘총포류 등 단속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둥, 화염병 투척 우려가 있는 집회와 시위는 원천 봉쇄하고 아예 허가하지 않겠다는 둥, 고무충격총을 사용하겠다는 둥…. 4월 2일 ‘화염병기동타격대‘를 편성, 폭력시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KBS 등은 9시 뉴스에 기획으로 서너 꼭지를 연달아 3월 30일 민중대회 장면 중 자극적인 것만을 편집해 ‘화염병 무섭다’로 도배하고, 신문은 “무기력한 공권력”을 나무랬다. 모든 논조가 신기하리만큼 일치했다.
화염병·폭력시위 -> 공공질서 파괴·국가신인도 하락 -> 외국인 투자기피 -> 경제회복 걸림돌 -> 폭력시위 엄단.
4월 2일 김 대통령이 “화염병으로 인한 경제 악영향”을 다시금 확인하자, 4월 5일 교육부가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 “폭력시위학생에게 학칙을 엄격히 적용”하라고 독려했고, 6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는 한술 더 떠 “화염병 투척자 취업불이익 검토”라는 기상천외한 발상까지 나왔다.
우익단체, 대통령과 행정부, 언론의 지원에 힘을 얻은 대검공안부는 7일부터 보다 공격적으로 화염병 시위자를 검거하기 시작했다. 이에 화답하듯 법원은 8일, 철거반대시위 도중 철거용역반에 화염병을 던진 철거민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공안당국이 그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던 ‘신종화염병’은 단 한번도 시위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신종화염병’이 나오면 ‘총포류등단속법’ 발동을 공언했던 검찰은 기다리다 지친 듯 아예 일반화염병에 대해서까지 ‘총포류 등 단속법’으로 처벌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화염병처벌법’도 개정하고-왜냐하면 현행법으로는 그리할 수 없으니까-, ‘집회와시위등에관한법률’도 개정해 폭력 우려가 있는 시위는 아예 봉쇄하겠다고 말했다. 마침내 감춰왔던 속내를 드러냈다! 공안당국의 주타격대상은 ‘폭력’시위가 아니라 시위 그 자체였던 것.
공안세력은 ‘김대중식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고 자신의 밥그릇 보전을 위해 인권이니 나발이니 하는 허울을 벗어 던지고, ‘법의 이름’으로 ‘전방위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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