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분증의 망령이 다시 찾아왔다. 99년 사망선고를 받았던 전자주민카드 구상이 최근 보건복지부의 전자건강카드(건강보험증) 사업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우리는 전자주민카드를 둘러싼 3년여의 논란을 거치며, 전자화된 국가신분증 체제가 가져올 위험성을 충분히 경고한 바 있다. 개인정보 유출과 그에 따른 부작용은 물론, 국가권력에 의한 사생활 추적과 국민통제가 한층 수월해진다는 점등이 주요한 우려사항들이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추진중인 전자건강카드는 수록내용만 차이가 있을 뿐, 전자주민카드와 하등 다를 바 없다. 주민번호, 이름, 혈액형, 처방내역, 병력사항 등 각종 개인정보가 IC칩 카드에 기록되고, 그것이 전산망을 통해 오가며 관리된다. 또 신원확인을 위해 전자지문을 카드에 삽입한다고 한다. 개인으로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병력정보가 유출돼 취업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며, 병․의원으로부터 시작된 전자지문감식 시스템은 그 편리성으로 인해 언제든 전 사회로 확산될 수 있다.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전자기록으로 남는 시대, 이른바 ‘전자감시’ 시대가 현실화된다는 게 기우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특히 전자건강카드에 신용카드 기능까지 부여한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대금결제 과정에서 신용카드회사로 넘어간 정보들은 얼마든지 민간보험이나 제약회사 등으로 ‘팔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에게 다른 실익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의 부당․허위 청구를 근절하기 위해 전자건강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효성이 없다는 게 드러나면서, 곧바로 “정보화로 인한 편익증진이 주목적이며 허위․부당청구 방지는 부수적 효과”라고 말을 바꿨다. 단지 행정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국민 전체의 인권을 희생시키겠다는 것인가?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전자건강카드가 막대한 이권사업이라는 점이다. 연간 수조원 대 시장을 형성하는 이 프로젝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으며, 때문에 관련 업계의 경쟁과 로비가 이미 가열되고 있다.
전자건강카드 도입으로 누가 이득을 보게 되며, 누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지는 분명하다. 보건복지부가 서둘러 전자건강카드 사업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 혹, 업계의 로비에 밀린 것은 아닌가? 막대한 혈세를 낭비한 끝에 폐기된 전자주민카드사업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서는 안 된다. 보건복지부는 지금 당장 전자건강카드사업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