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업들에서 연속으로 터진 해킹 사건,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추적하고 감시해온 스마트폰, 몇몇 연예인에 대한 영리적 신상털기 행태. 최근의 주요뉴스를 장식한 일들이다. 서로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종종 발생해온 이런 사건들은 온라인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정보을 공개하고 공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달라진 정보문화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사건을 악의적 해커(혹은 북한)의 소행으로 보거나 고도화된 이용자 위치정보 수집의 불법성을 따지거나 일부 막나가는 네티즌의 일탈을 비난하는 식의 사법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온전히 해결되기 어렵다. 때 되면 터져나오는 반복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여러 각도에서 오늘날 프라이버시가 처한 위기를 부각시키는 개별 사례라고 할 만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라지고 있는 듯한 오늘의 정보문화 현실을 심도깊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감시 기술의 민주화
방문한 인터넷 웹사이트 접속 기록, 주고 받은 이메일, 여기저기 남긴 댓글, 메신저 대화, 트윗이나 담벼락 게시물 , 언제 어디서 올리거나 내려받은 사진, 음악, 비디오 등 모든 정보를 국가기관이나 기업이 언제든지 손쉽게 수집하고 분석하여 감시·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널리 퍼져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감시 기술은 우리가 맘만 먹으면 개인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손쉬운 것이 되었다. 시민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기업을 창업할 수 있고, 누구나 수퍼스타가 될 수 있게 된 것처럼 또한 누구나 ‘큰형님’(빅브라더)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시 기술의 민주화 덕분이다. 구글 검색만으로도 가능한 신상털기가 두드러진 현상으로 주목되고 있지만 여기에는 널리 퍼져있는 소셜 미디어(감시) 문화가 전제되어 있다.
신상털기: 또 하나의 시민 참여 미디어
신상털기는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이나 느닷없이 사회면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된 평범한 개인을 목표대상으로 해서 종종 발생해왔다. 가장 최근의 사례에서 특기할 만 것은 그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양상이 온라인 상업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는 형태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마녀사냥 , 사이버 좀비, 인격살인, 사이버 괴롭힘, 무분별한 사생활 들추기로 비난 받는 일임에도 일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화한 신상털기를 인터넷의 네티즌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현상처럼 이야기하지만, 신상털기는 그 말이 있기 전부터 광고 수익에 의존해온 언론 미디어의 주특기였다. 초국적 미디어 제국을 거느린 루퍼드 머독 소유의 영국 일요 신문인 ‘뉴스 오브 더 월드’나 자매지 ‘더 선’ 등이 영국 왕실의 휴대폰을 해킹해 불법 감청하며 그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기사를 작성해왔다. 불법 해킹까지 일삼은 언론 보도는 다소 극단적인 경우라고 하더라도, 사건사고가 적시에 알아서 그럴듯하게 터져주지 않기 때문에 언론 미디어는 연예인을 비롯해 주목을 끄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캐내어 적절히 폭로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아 구독률이나 시청률을 올리고 곧 광고 수익도 높여왔다.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일부 네티즌이 그런 언론 미디어의 관행을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 미디어에 호의적이던 언론 미디어가 이런 종류의 시민 미디어에 대해서는 냉담한 듯 하다. 두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추자는 사이트가 “모두 상업 광고가 붙어 있어 두 사람의 사생활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부르고 있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하고 있는 언론사 웹사이트 자체는 그와 다름없는 온갖 고민해결류의 상업광고를 위아래 양옆에 배치한 채로 무분별한 사생활 들추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거듭 들추면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사실, 신상털기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때 그에 광고를 붙여 돈벌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놀랄 것도 없이 인터넷에서 오래전부터 그렇게 자리잡아온 언론 미디어의 관행을 그대로 따르는 것일 뿐이다.
페이스북에서의 셀프-신상털기
그런데 시민 미디어를 자처해온 오마이뉴스는 (역설적이게도) 최근의 신상털기 사태에 대해 심지어 “네티즌이 미쳤다”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제목을 달았는데, 그러면 일부 미친 네티즌을 인터넷에서 걸러내는 것으로 해결하자는 얘기일까. 광고로 돈벌이를 해야하는 언론 미디어의 뉴스상품 생산양식이 이미 그러하다는 것을 잠시 눈감아주더라도 신상털기가 뭔가 이상한 사람들만의 인터넷 비행이나 일탈로 보고 끝낼 사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일부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여하고 있는 문화가 사태의 이면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의 유행은 곧 소셜 (미디어에 기반을 둔 사회적) 감시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고 있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고 그에 상호작용하면서 나를 드러내고 나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넓혀나가는 데 최적화된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이런 정보자본주의 문화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익숙해지고, 사적 정보의 공유 서비스가 편리할 뿐만 아니라 나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개인정보는 더 드러내야 좋은 일이 되고 있다.
신상털기가 어느 한 두 명의 사적인 정보를 무차별적인 대중이 집단을 이뤄 폭력적으로 공개하는 사건이라면, 페이스북은 자기 스스로 신상을 드러내어 연계를 맺는 기제로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신상 공유문화이다. 서로 달라보이지만, 특정한 사건사고가 터져나오는 때 곧바로 신상털기가 뒤따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신상 공유문화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통한 위치추적과 감시가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아니한 것을 넘어)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것이라면, 그에 못지 않게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끊임없이 노출(유출)될 수 있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의 이용은 마치 합법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양자의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감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와 같이 소셜 미디어(감시)는 지금까지 감시의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자발적이고 합법적인 그것으로 바꾼다는 데에서 가장 큰 특징을 보여준다. 물론 정보 감시의 폭력적 성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로부터는 정부·기업의 대규모 정보유출 사건으로 그리고 아래로부터는 신상털기와 같은 형태로 그 폭력성이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의 위기
페이스북의 창업자는 “이제 사람들은 보다 많은 정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데 편안함을 느끼며, 개인적인 프라이버시 문제는 더 이상 사회적인 규범이 아니”라며 “프라이버시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구글의 사장도 “인공지능으로 당신이 올린 글과 위치정보를 분석해 우리는 당신이 다음에 어디에 갈 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전세계 45개 소셜네트워크사이트 중 60%가 개인 신상정보의 공개를 기본으로 설정해놓았고 그 이용자의 80~99%가 기본 설정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맞다면, “프라이버시 시대의 종말”은 그냥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프라이버시 위기는 사적 정보가 흐르는 사적 영역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다. 우리의 사적 정보가 노출되고 유출되어 가는 곳이 다름 아닌 공적 영역이고, 그렇게 사적 정보가 공적 영역을 뒤덮어 사회정치적 사안들을 유야무야 묻어버리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 철학자가 지적하듯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프라이버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공적 영역과 그것이 수반했던 위엄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공적 영역이 그 위엄을 계속 지킬 만한 것이었느냐는 별도의 문제로 한다면, 기존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게 될만큼 상황이 변했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어느 것이 “사적인 문제”이고 어떤 것이 “공적인 관심을 쏟을 사안”인지를 누구가 구별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프라이버시 침해 사건들이 많아졌다는 차원이 아니라 기왕의 (시민에 대한) 정치적 감시와 (노동자와 소비자에 대한) 경제적 감시에 더해 시민 참여적 사회적 감시로서 소셜 미디어(감시)까지 확산되고 있는 현 상황은 프라이버시가 처한 심화된 위기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 각자의 신상, 상태, 위치, 행태 정보가 무엇보다도 소셜 미디어나 모바일 기기를 매개로 상품으로 거래되고 교환되면서 프라이버시는 이제 근대국가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인권의 의의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프라이버시의 위기를 온전히 넘어서는 작업은 정치적 감시나 경제적 감시 뿐만 아니라 자발적 소셜 감시를 통한 정보 상품 교환 문화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이를 우리가 얼마나 달리 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하겠다.
참고한 것
- 미디어오늘, 누군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 - ‘빅브라더’시대에서 ‘빅브라우저’ 시대로, 2010.2.3
- 보안닷컴, 프라이버시 시대 종식 선언, 2010.4.21
- 오마이뉴스, 서태지-이지아 마녀사냥... “네티즌이 미쳤다,” 2011.4.25
- 전자신문, 페이스북,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다,” 2010.1.12
- Felix Stalder, Autonomy and Control in the Era of Post-Privacy, Open 19 - Beyond Privacy: New Notions of the Private and Public Domains, 2010
- Slavoj Žižek, “Good Manners in the Age of WikiLeaks,” London Review of Books, 2011.1.20
- thinq_, No anonymity on future web says Google CEO - Privacy is so last century, 2010.8.5
덧붙임
조동원 님(dongwon@riseup.net)은 미디어운동과 문화연구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