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지배하는) 권력의 실체
위키유출을 인터넷에서 아예 제거하려는 시도들이 연달았다. 우선 미국, 중국, 이란, 프랑스, 호주 등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국 시민들이 위키유출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했다. 위키유출의 외교전문 폭로가 있은 직후 몇몇 해커들이 미 국방성이 뒤를 봐준 상황에서 혹은 자발적으로 위키유출 웹사이트에 분산 서비스거부(DDoS) 공격을 퍼부었다. 유수의 인터넷 기업들과 금융 기업들이 위키유출의 퇴출 작업에 가세하면서 위키유출이 차마 폭로하지 못했던 권력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12월 3일 인터넷 도메인 업체 ‘에브리디엔에스’(EveryDNS.net)는 위키유출이 분산 서비스거부 공격을 받아 위키유출 도메인이 자사를 이용하는 약 50만 개의 다른 웹사이트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이에 대한 접속을 차단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도메인 이름 시스템(DNS)의 사적이고 중앙집중화된 관리구조를 통해 인터넷에서의 검열이 어떻게 가능한지 잘 보여주었다.
또, 위키유출의 일부 서버가 아마존의 ‘웹서비스’(aws.amazon.com)에 있었던 모양인데, 이 역시 외교전문 폭로 직후 그 서버 호스팅이 중단되었다. 이에 미국 정부의 압력이 있었는지에 대해 논란이 됐는데, 아마존이 댄 이유는 “논쟁적 데이터가 호스팅하는 웹사이트에 있는 것은 좋은데,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자기 데이터가 아닌 위키유출의 경우, 무고한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고 ...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줄 데이터의 출판”으로서 이용약관 위반이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구름 전산’(cloud computing) 사업에 미국 정부가 최대 고객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굳이 정부의 협조 요청 전화 같은 것은 애초 불필요했을 듯하다. 그런데 설령 그것이 아마존의 말대로 정부의 압박과 삭제 요청이 아니라 아마존의 자율적인 결정이었다고 한다면, 괜찮은가?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대부분 비용이나 편리함의 이유로 기업의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인터넷에서 우리가 이용하는 거의 모든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대부분의 서버 시스템을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기업이 직접 누가 법을 어겼는지를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곧 인터넷 정보 전체를 자의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려준다.
사실 국가 권력의 정치적 검열만이 아니라 인터넷의 주요 하부구조를 소유하고 관리하는 기업들의 (정치)경제적 검열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더욱 심각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단지 위키유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점차 구름 전산의 형태로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서버를 확보하지 않고 기업이 원격으로 제공하는 서버·저장공간·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이번 사태는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서버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외부 압력에 의해 혹은 자체 검열 체계(이용약관 등)를 통해 기존 언론사나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과 대안 언론 활동을 곧바로 중단시킬 수 있다. 게시물에 이적 표현물이 있는지 포르노물이 있는지를 열어보기 위해 경찰들이 서버실(데이터센터)에 들이닥치고 실랑이를 벌이는 일 없이 평화롭게(!) 어딘지 모르는 ‘구름’ 저편에서 슬그머니 처리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위키유출 활동 자금과 후원금의 흐름을 끊는 금융 탄압이 있었다. 스위스의 포스트파이낸스 은행이 어산지의 은행계좌를 폐쇄했고, 페이팔은 위키유출에 대한 후원계좌를 차단했으며, 마스트카드나 비자 역시 위키유출에 대한 자금 결제서비스를 중단했다. 인터넷을 통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이 동원된 셈이다. 도메인이나 웹호스팅 기업이 그랬듯이 이들 금융 기업은 미 정부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독자적인 판단으로 내린 조치라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외부 압력에 따른 것이든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든 지구적 금융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자본이 곧 권력이라는 것을, 그저 돈줄을 끊는 것으로 검열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덧붙여, 러시아의 한 앱 개발업체가 애플의 아이튠즈에 올린 아이폰용 위키유출 앱은 “어산지가 미국 법정에 설 경우 필요한 변호 비용 모금을 거들기 위해 앱 판매 수익의 절반가량을 위키리크스 측에 기부하겠다”고 한 것인데, 애플은 앱을 통한 기부 권유를 금지하는 애플의 지침을 어겼다면서 12월 21일 앱스토어에서 이를 삭제했다. 상관이 있는건지 모르지만, 그 몇 주 전에 미 육군이 아이폰 혹은 안드로이드폰을 모든 병사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수많은 위키유출(Wikileaks)들, 그리고 ‘대안 인터넷’의 가능성
위키유출에 대한 입체적 탄압이 계속되자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익명 공동체 ‘무명씨’(Anonymous)가 반격에 나섰다. 2010년 중반 내내 이들은 피투피(p2p) 파일공유 공동체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 집행에 앞장서온 여러 정부기관 및 민간 단체를 목표대상으로 분산 서비스거부 공격을 하며 ‘보복작전’(operation Payback)을 벌여왔는데, 이를 위키유출에 대한 보복작전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무명씨는 12월 6, 7, 8 연일 스위스은행, 페이팔, 마스터카드와 비자, 아마존, 어샌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스웨덴 검찰청 웹사이트 등을 공격했다. 물론 이들의 해킹 공격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여기서 언급할만한 것은 상당한 해커 공동체가 어산지나 위키유출을 지지한 것이 아닌 것처럼 위키유출을 지지하는 무명씨의 해킹 공격에 대부분의 해커들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2010년 12월 ‘카오스컴퓨터클럽’(CCC)의 27회 해커회의(Chaos Communication Congress)에서 기조연설을 한 롭 공그립(Rop Gonggrijp)은 우리가 인터넷 자유,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고 할 때 그것은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디도스 공격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트토렌트’는 위키유출이 공개한 문서의 분산적 배포와 다중적 공유에도 잘 활용되었다. 비트토렌트는 대용량 디지털 파일을 이용자들 간의 직접 연결을 통해 올리고 내려받는 피투피(p2p) 파일공유 통신규약(protocol)이자 프로그램이다. 냅스터나 소리바다 등이 2메가에 가까운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데 쓰였다면, 비트토렌트는 주로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파일 공유에 쓰이고 전세계 인터넷 교통량(traffic)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다. 저작권체제의 관리자 관점에서 볼 때 불법복제 해적질의 주요 도구인 셈이다. 이 역시 냅스터와 그 이후 그누텔라(Gnutella), 카자(Kazaa) 등과 마찬가지로 해킹 지하문화의 소산인데, 그런 가족유사성을 배경으로 정보상품의 대량 유출을 도우며 그 유통의 감시 통제권(저작권)을 무력화시키는 도구가 자연스럽게 국제정치를 뒤흔드는 기밀 유출의 정치적 도구로 된 것이다. 피투피(p2p) 기술의 디자인 특성상 우리가 이 위키유출의 폭로 문서 파일을 내려받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유출 문서의 배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더 나아가 더 이상의 유출과 확산을 막기 위해 위키유출 웹사이트라면 그 도메인을 삭제하고 서버 호스팅을 중단하면 되지만, 일단 이것이 비트토렌트와 같은 피투피(p2p) 파일공유를 타기 시작했다면 인터넷 자체를 폐쇄시켜야 가능하다.
도메인과 서버가 차단되자 전세계적으로 1,000여 군데 이상의 웹사이트가 위키유출의 유출 문서를 똑같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미러링’을 제공했다. 미러링 사이트 중에는 디지털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프랑스의 오우니(Owni.fr)나 좌파 신문인 리베라시옹(libération.fr), 덴마크 신문사인 폴리티켄(Politiken) 등도 포함되었다. 흥미롭게도 폴리티켄(Politiken)의 서버는 아마존의 웹서비스에 있는데 좇겨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느 한 미러링 사이트는 혹시 모를 디도스 공격을 이유로 인터넷서비스업체(ISP)가 그 계정을 삭제해버렸다. 디도스 공격을 받을 잠재성만으로 검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거울 기술(mirroring)은 현실에서처럼 단지 그 외양의 이미지만을 (허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디지털 정보 전체를 복제해서 마치 손오공이나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처럼 (무한한) 자기복제를 가능하게 한다. 위키유출이 도메인 이름(DNS) 호스팅과 서버 호스팅을 거부당했을 때, 이렇게 위키유출을 수 백 개, 수 천 개로 동일 복제하는 거울들이 생겨났다. 더 나아가 네트워크 상의 거울은 형태변환도 가능해서 대체로 애초의 위키유출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지만 일부는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 창조적 변이의 경향은 하나가 지역화라면, 또 하나는 탈중심화로 갈래쳤다. 먼저 3년동안 위키유출의 대변인으로 활동한 다니엘 슈미트(Daniel Schmitt)는 어산지의 권위주의와 위키유출의 중앙집중화 방식을 비판하며 2010년 9월에 위키유출을 나와 몇몇 해커들과 탈중심화된 방식의 ‘열린유출’(openleaks.org)을 구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편집자 혹은 관리자(admin)의 권한을 분산시키면서 공동체 참여를 통한 정보 유출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디자인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화를 위한 여러 복제 사이트들은 위키유출을 해킹(혹은 갈래치기[porking])한 다양한 변이들이다. 발칸유출(BalkanLeaks), 브뤼셀유출(BrusselsLeaks), 인도네시아유출(IndoLeaks), 이스라엘유출(israeliLeaks), 필리핀의 피노이유출(Pinoy Leaks), 체코 해적당의 해적유출 (Pirate Leaks), 러시아의 라스필(Rospil), 태국외교전문(thaicables) 혹은 태국유출(Thaileaks), 튀니지유출(TuniLeaks) 등. 피노이유출의 경우 위키유출처럼 주류 언론과의 제휴를 통한 문제적 폭로 방식이 아니라 관련 블로그들과 협력한다. 튀니지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대한 뉴스 보도들은 튀니지유출의 역할을 상당히 과장하고 있지만 위키유출의 수많은 지역화 혹은 탈중심화된 복제판들이 갖는 잠재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신분 노출 없이 제보가 가능하다는 근거로 ‘G메일(4riverleaks@gmail.com)’ 등의 사용을 들고 있어 걱정이 크지만, 국내에서도 ‘4대강리크스’(4riverleaks.com)가 등장했다.
또, 유출 문서의 해석과 분석의 대중 참여를 조직하거나 위키유출의 실험을 체험하고 연습(!)하는 방법으로 “외교전문 파문” 게임(Cablegate, the Game), “유출되는 세계” 비디오 게임(Leaky World), “위키유출: 게임”(WikiLeaks: The Game) 등이 만들어졌다. 주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여러 위키유출 노래도 불려졌다. 말 그대로 랩으로 뉴스를 전하는 호주 미디어 문화 활동가들의 ‘랩뉴스’(Rap News)는 그 네번째 편(위키유출 대 국방성 - 인터넷 WWW전쟁)과 다섯번째 편(신세계질서 - 저널리즘 전쟁: 줄리앙 어사쥐 출연)에서 위키유출을 다루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위키유출의 내부고발 – 정보유출 – 폭로의 장르를 또 다른 장르와 접목해 변형시키면서 위키유출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을 다르게 지각하고 인식하는 참여적 경험을 제공하는 또 다른 변이들이다.
검열로 이어진 기업 소유의 도메인이름서버(DNS)나 웹 서버에 대한 더 나아간 대응을 위해서라면, 피투피 파일공유에 대한 탄압과 검열에 맞서기 위해 ‘닷-피투피 프로젝트’(The Dot-P2P Project)와 같은 대안적 도메인이름시스템(DNS)이 이미 개발 중에 있고, 웹호스팅하는 서버와 이를 이용해 구축한 웹사이트 사이에 암호화된 계층을 삽입해 어떤 것이 호스팅되고 있는지 모르도록 만드는 ‘언호스티드’(unhosted)라는 프로그램이 초기 개발돼 있는 상태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 금융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거대 금융 기업들이 통제하는 신용 거래나 온라인결제를 대체해서 ‘플래터’(Flattr)와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이용한 후원과 소액결제 방식이 활용되었고, 더 나아가 탈중심화된 인터넷 화폐를 실험하고 있는 ‘비트코인’(BitCoin) 같은 기왕의 프로젝트가 대안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들은 물론 위키유출에 대한 탄압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상당히 진척된 인터넷의 사유화와 검열 통제에 맞서서 여기저기서 시작된 것들이다. 따라서 이번 위키유출 사태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러한 여러 움직임들을 ‘대안 인터넷’ 운동으로 결집시키는 하나의 계기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덧붙임
조동원 님(dongwon@riseup.net)은 미디어운동과 문화연구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