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5월 24일 공포되었다. 이 법에 따라 인권위원회가 정식으로 문을 여는 건 올 11월 말. 3년을 넘게 끌어온 ‘격투’치고는 싱겁게 끝났다.
법 공포후 한 달. 정부는 인권위원장과 위원, 사무총장 인선에 여념이 없지만 인권활동가들은 침묵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긴 싸움의 여진이 가시지 않아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권위 시대를 가늠할 수 없어서. 사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시대를 예견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 또한 숙명이라 할 것이다.
‘인권위 시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인권위 시대에 인권활동가와 단체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인권위 시대에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는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권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인권위가 뭔지 모르면서 인권위 시대를 예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경비견이다
인권위는 한마디로 인권이라는 간판을 들고 다니며 짖어대는 ‘경비견’이라 할 수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다, 인권침해에 대해 짖어대는 것이다. 짖어대고 눈을 흘길 수는 있으되 물어뜯을 수는 없다. 이른바 ‘권고적 효력’이다.
수사도중 경찰관에게 폭행을 당한 사람이 인권위에 진정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하자. 조
사가 끝난 뒤 인권위가 ‘가해자’에게 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수단은 두 가지밖에 없다. 검찰에 고발하거나 당사자에 조정 결정을 내리거나. 인권위가 가해자를 검찰에 고발하면 검찰은 형사처벌할 수도 있고 불기소처분을 할 수도 있다.
권고란 받아들여도 그만,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만이다. 다만 권고를 받은 해당기관은 인권위에 반드시 처리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인권위는 넘겨받은 처리 결과를 살펴 처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론에 공표하여 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다. 어찌 보면 국가기관이면서도 시민단체와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곳저곳 사이렌을 울리며 누빌 수 있되, 강권을 발동할 수는 없다.
또한, 진정인과 피진정인을 불러 조정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조정이란 당사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므로, 어느 일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결국 인권위는 아주 잘 만들어질 경우에도 개별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구제에 상당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가 나름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법령이나 관행 등을 고치도록 요청하고, 이행실태를 감찰하는 정책권고 분야와 인권교육 분야이다. 이때 인권위가 맞추고 있는 눈높이는 국제인권기준이다. 다른 국가기관이 국내법에 활동근거를 두고 있다면 인권위는 국제인권법에 활동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인권위는 국가가 자신이 과거에 저질러온 인권 침해행위를 반성하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한 눈은 시민사회에, 다른 한 눈은 국제인권법에 고정하고 활동하는 국가기구내 영원한 아웃사이더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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