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정규직화, “싸우기를 포기하면 얻은 것도 물거품”
2001년 3월 7일, 265일 파업대장정을 마무리 한 이랜드 노조원들은 6가지 약속을 했다. 그 중 하나가 한통계약직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전국순회투쟁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이랜드 노조원들의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는 남달랐다. 자신들이 한통계약직 노동자등의 연대투쟁의 성과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비정규직 문제에서 연대의 성과가 크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을 변경, 도급업체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삼아 고난을 ‘자초’한 이랜드 노동조합(위원장 배재석)은 불법파견근로 일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채용의 길을 텄다.
부곡물류창고에서 일하다 도급계약이 해지된 노동자 직접채용, 부곡물류창고에서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곡물류창고를 제외한 곳은 3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전형절차를 거쳐 정규직으로 채용. 이것이 이랜드 노사가 합의한 주요내용이었다.
12일 만난 이랜드 노조 이남신 사무국장은 “파업 이후 부당노동행위나 현장의 노사갈등은 별로 없다”고 운을 뗐다. 무엇보다 “도급업체를 통한 불법파견근로가 이미 파업기간에 일소된 점이 큰 성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사가 합의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아직 이행이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임금을 올려주는 대신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이 사무국장은 “3년 이상 근무자의 특별전형을 통한 채용도 여전히 미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측이 노사합의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채용의 선례를 남기길 꺼려하기 때문”이다.
또 사측의 고용형태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대부분 계약기간 9개월을 넘기지 않거나,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채용문제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말고도 이런 새로운 경향에 대처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물론 지난 6~7월에 진행된 노동부의 특감에서 ‘IMF 위기’ 직후 받지 못한 연월차, 휴가비 총 5억여원을 대부분의 비조합원이 돌려받고, 관리자의 부당노동행위가 거의 사라져 비조합원들이 조합을 신뢰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 아주 큰 성과다. 이에 비해 조합원들 대부분은 265일 파업기간이 근로기간에서 제외돼 승진, 임금 등에서 실익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 때문에 한 때 조합원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평상심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무국장은 노사합의 당시 ‘성희롱 관련 소송’을 취하해 “당사자들의 원망은 두고두고 짐이 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 “성희롱 전담기구가 설치되고 이를 전담할 관리자가 지정되기도 했지만, 실질화됐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며, “다만 이전과 같은 성희롱 등이 사라진 것이 다행”이라고 밝혔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사무국장은 “비정규직 대부분이 해고되고 나서야 싸우는 경향이 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역설적으로 조직률 7~8%에 불과한 이랜드 노조도 싸웠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변하는 경향을 감안한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곧 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정규직 노조가 자신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비가 부족하다고 회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랜드의 경우는 준비가 부족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