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주자(탈북자) 이모 씨는 국내에 입국․정착하는 과정에서 정보기관으로부터 당한 가혹행위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물으며 3년이 넘는 법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북한이주자들이 입국하면 서울 영등포 소재 '대성공사'라는 일종의 정착지원시설에 수용된다. 여기서 처음 1개월 동안 국가정보원, 경찰청, 기무사 등 5개 정보기관으로부터 집중 조사를 받고, 이어 '정보자료수집'이라는 명목으로 5개월 정도 더 조사를 받는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정보기관원들에게 폭언․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한다고 알려져 왔다.
91년 북한을 탈출해 95년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이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씨는 입국 즉시 대성공사로 이송되어 갖은 수모와 협박, 구타를 당했다. 북한, 중국, 러시아 당국 모두에 붙잡혀본 경험이 있는 이씨에 의하면, 이는 정보기관원들이 간첩이나 범죄자의 기를 죽이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한다.
이에 이씨는 99년 2월 가혹행위를 당한 다른 북한이주자들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소송은 2000년 10월 패소했고, 이어 제기한 항소도 지난달 11일 기각됐다. 이유는 모두 '증거부족'. 그러나 이씨는 29일 또 다시 법원을 찾았다. 그리고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이씨는 자신이 제시했던 증거가 정보기관원들의 가혹행위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너 있을 때(이씨가 대성공사에 있을 때) 내가 자주 욕도 하고 험악한 소리도 많이 했잖아." "선생님(정보기관원)들이 두드려 팬다고 주먹 쥐고 달려드는 놈도 있고, 이제 방금 얘기한 그런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냐, 없냐?" 이씨가 소송을 제기한 후 4개월쯤 지나 대성공사 시절 담당부장이었던 김석중 씨와 통화한 내용 중 일부다. 여기서 김씨는 '자신이 이씨에게 폭언을 했고 정보기관원들이 북한이주자들을 두드려 팼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녹취되어 증거자료로 제출됐었다.
또한 이씨는 97년 2월 국가정보원 청사로 불려들어가 서진화로부터 가슴, 뺨 등을 구타당한 사실이 있다. 앞서 이씨가 한국일보 등에 '북한이주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관리가 문제있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는데,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트집을 잡은 것. 이와 관련 당시 이씨를 담당했던 이명재 형사가 이때의 구타사실을 시인하는 녹취내용도 증거자료에 들어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제19민사부(재판장 김용균 판사)는 판결문에서 "(녹취록의) 기재내용 중 김석중의 진술부분은 그 진성성립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고 "이명재의 진술부분…만으로는 (가혹행위)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국정원 직원과 담당형사가 (나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말한 내용이 있는데, 어떻게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번 소송을 대리했던 임영화 변호사는 "대화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이씨가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이라는 점도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며, 이후 대법원에서는 대화 녹취록만으로도 가혹행위 사실을 입증하는데 충분한지 여부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99년 소송이 시작된 후, '대성공사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북한이주자의 보고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이씨는 전했다. 향후 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이번 소송이 북한이주자의 인권향상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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