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벌, 십만 농민 함성 가득
13일 하루 서울 여의도는 정부의 농업포기정책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로 넘실거렸다.
이날 여의도 둔치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아래 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공동 주최로 열린 '우리 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10만명 가까운 농민들이 참가했다.
제주도에서 2백70명의 농민들이 비행기 2대에 나눠 타고 왔는가 하면, 진도의 농민들은 대회 시간에 맞추기 위해 하루 전날 밤 고향을 출발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전농 정현찬 의장은 이날 대회사에서 "해방 이후 최대규모의 농민집회"라며 "이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수입개방의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며 목숨 줄을 버텨온 우리 농업이 아예 거덜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4년 WTO 쌀 재협상을 앞두고 정부는 공산품 수출을 위해서는 쌀시장의 대폭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정부가 가서명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내년 초 국회가 비준하면, 값싼 칠레산 과일·채소류가 대량 수입돼 과채류 생산 농가를 파탄에 빠뜨릴 것이라 전망되고 있다.
전농 문경식 부의장은 "몇 년 전 미국산 오렌지 수입만으로도 과일 가격이 전반적으로 폭락했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과채류에 대해 계절관세를 부과해, 농민을 보호한다고 사기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농업은 농민 뿐 아니라 우리 국민모두의 건강과 환경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은 한결같이 쌀 전면 수입개방 등에 대해 강한 위기감을 나타냈다.
전주 완주군 이서면에서 벼·담배·채소 농사를 짓는다는 박창규 씨는 "미국 쌀이 들어오면, 우리 쌀 농사는 망한다"며 "지금도 이미 농사짓느라진 빚이 3천만 원에 달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박 씨는 "외국쌀은 농약도 많이 쳐 건강에도 안 좋으니까 우리들이 농사지어 우리 국민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영양에서 고추농사를 짓는다는 한 아주머니는 "쌀이 개방되면, 농민들이 다른 특수작물로 몰리고 그러면 과잉 생산되니까 농산물 값이 다 떨어진다"며 "쌀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농산물도 다 무너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남 산청에서 쌀농사 짓는 부모님 따라 왔다는 강주원, 강주호 초등학생 형제는 집회 내용이 무엇인지 아냐고 묻자 "외국에서 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이날 대회에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참석해 농업정책에 관해 연설했다.
노 후보는 "개방은 최대한 저지하겠다, 농가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농가소득 보전에 힘쓰고, 작지만 강한 농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권 후보는 "후보직을 걸고 쌀만큼은 지키겠다고 했던 김영삼 씨나 농가부채를 탕감하겠다고 약속했던 김대중 씨나 대통령이 된 후 아무것도 지킨 것이 없었다"며 지금은 농산물 개방을 강요하는 미국과 WTO에 맞서 싸우겠다는 말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농민들 일부는 노 후보나 정 후보에 대해 야유를 퍼붓는 등 제도권 정당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WTO 쌀 수입개방 반대 △식량자급목표 법제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 거부 △농업통상에 농민대표의 참여 보장 △품목별 생산비에 기초한 가격보장 대책 마련 등 8대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11월 25일에도 제2차 농민대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