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계에도 못 미치는 빈곤
지난해 12월 하월곡동 산2번지 언덕 꼭대기 구멍가게에서 만난 통장 부부는 자신들이 사는 얘기를 들려주는 대신,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골목으로 나섰다. 그들이 발걸음을 멈춘 집 앞에서 누구보다 힘들게 달동네의 겨울을 나고 있는 한 가족을 만났다. 최저생계를 이어가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감당하고 있는 빈곤은 곧 생존권의 박탈이었
다.
어느새 곽길자 씨 집 앞에 통장부부와 동네 할아버지, 세 살 박이 막내딸을 안은 곽 씨가 좁은 골목을 꽉 메운 채 둘러섰다. 그들이 쏟아내는 말에서 곽 씨네 여섯 식구의 힘겨운 겨우살이를 짐작한다. 곽 씨는 "몇 달 전에 30만원씩 지급되던 생계급여가 9만8천 원으로 깎이고 나서 더 힘들어졌다"면서 "겨울이라 남편은 일을 못하는 날이 더 많은데"라고 속상한 마음을 토로한다.
곽 씨네 사정을 잘 안다는 동네 할아버지는 "이 집 애 아빠가 일 나가는 날은 한 달에 보름도 못 된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많아야 70만원이고 적으면 50만원도 안 되는데, 생계보조금을 10만원 정도밖에 안 주면 60-80만원으로 여섯 식구가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며 여섯 식구의 고된 삶을 전하려 애쓴다.
곽 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이다. 수급권을 가진 모든 사람은 국가로부터 최저생계를 보장받아야 하지만, 곽 씨 식구가 한 달을 나는 60-80만원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3년 6인 가구 최저생계비 130여 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곽 씨는 6인 가구 최저생계비 130여 만원에서 교육비, 의료비 등으로 공제되는 15만원 정도와 노동에 의한 가구소득 50-70여 만원을 빼고, 나머지 45-65만원 정도를 지급받아야 했지만, 곽 씨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고작 10만원도 안 되는 것이다.
권리 되찾는 방법도 몰라
문제는 동사무소 사회복지사가 책정한 곽 씨 남편의 일일근로소득에 있었다. 동사무소 기록에 책정된 그의 일일근로소득은 100만원이 넘었다. 방수공사를 주로 하는 건설일용노동자로서 겨울에는 채 보름도 일하지 못하는 사정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과도하게 책정된 일일근로소득에 대해, 이 지역 사회복지사는 "일하는 사실이 확인된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일일근로소득을 책정하는데, 주로 노동사무소나 직업소개소를 통해 파악된 비숙련 노동자의 일당 수준에 기초한다"라면서 "그들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며칠을 일하고 얼마를 받는지 확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실질 근로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담당하는 가구가 터무니없이 많은 현실이 이런 문제를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몇 달 전 철거로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350가구를 담당해 왔다.
이처럼 불합리한 행정조치에 의해 최저생계를 보장받을 권리를 박탈당할 경우, 해당자가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을 통해 구제를 받을 길은 있다. 그러나 곽 씨를 비롯해 상당수의 수급대상자들은 박탈된 권리를 구제 받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