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폐쇄형 수용시설인 정신병원의 인권유린 실태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일부 확인됐다. 국가인권위는 21일 부산의 한 정신병원에서 인권유린 행위가 지속되어온 사실을 확인하고 병원 관계자 2명을 검찰총장에게 고발했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는 지난해 3월 부산 만덕복음병원(아래 만덕병원)에 수용돼 있던 김모(55)씨의 진정을 접수한 이후 6개월 동안 조사를 벌였으며 △가족의 의사마저 무시한 강제수용 △입원환자 이름의 가명 기재 △통신 및 사생활에 대한 침해 사실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단 수용되면 빠져나오기 힘들어
피진정시설인 만덕병원은 정신질환이 있는 무연고환자(이른바 '행려환자')를 폐쇄병동에 입원시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왔으며, 전체 수용인원 290명 가운데 통상 100명 정도가 행려환자인 시설이다.
이번 조사에서 국가인권위는 병원측이 가족들의 퇴원요청마저 무시하면서 환자를 강제수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인권위가 찾아낸 강모(53), 권모(48) 씨 등의 사례에 따르면, 병원측은 가족이 찾아와 퇴원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입원치료비 미납' 등의 이유를 대며 환자를 내보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조치는 "보호자로부터 퇴원 요구가 있을 경우 지체 없이 환자를 퇴원시켜야 한다"는 정신보건법의 규정을 위반한 행위다.
이처럼 병원측이 환자수용에 집착하는 배경엔, 환자 1인당 한달 평균 80만원에 달하는 지원금이 있다. 반면, 시설과 의료인력 면에선 법적 기준에 턱없이 모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는 또, "경찰관이 무연고환자를 발견했을 때, 일반 의료기관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정신의료기관에 인계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신과적 질환이 없는 무연고환자가 무분별하게 정신의료기관에 수용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입원환자의 기록을 가명으로 기재하고 있는 사실도 발견됐다. 병원측은 본인의 실명을 밝힌 입원환자에 대해서도 계속 가명 기재를 고집함으로써, 가족들의 접근을 사실상 방해했다.
인권위는 "병원측이 행정목적 등을 이유로 기록부에 가명을 기재해야 한다고 고집했으나, 시설에서 가명을 사용할 경우 가족 등이 환자를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본명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병원측의 조치는 환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뿐만 아니라, 만덕병원에서는 모든 입원환자의 전화통화를 감시하고 서신을 검열하며 필기구의 소지를 금지하는 등, 통신과 사생활의 자유도 과도하게 제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일부 국공립정신병원에 대한 실지조사를 실시한 결과, 입원환자에 대한 통신제한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을 확인했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보호시설 전반으로 조사확대 필요
현재 국가인권위에는 만덕병원 이외에 다른 병원에 대해서도 20건의 진정이 접수되어 있다고 한다. 인권위 조사기획담당관실의 임송 사무관은 "진정된 사건부터 차근차근 조사를 진행한 뒤, 전체적인 조사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 정신병원의 숫자는 70개 정도다.
한편 보건복지부 정신보건과 문진웅 사무관은 "인권위가 지적한 내용을 정리해서 의료기관 입원시설에 대해 일체조사를 한 뒤, 필요하다면 법령이나 지침을 고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조사를 계기로 정신병원은 물론, 각종 미인가 보호시설에 대한 인권실태조사 및 관련 법제의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