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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한 동성애자의 죽음을 통한 절규

20살 꽃다운 나이…동성애자 차별 없는 세상 먼저 찾아가


한 동성애자가 20살 꽃다운 삶을 마감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6일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이었던 윤모 씨가 끈으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것.

27일, 윤 씨의 빈소가 차려진 청량리 성바오로 병원에서 만난 동성애자인권연대(아래 동인련) 회원들은 지난 밤 이미 소식을 접하고 밤새 잠을 못 이뤘는지 모두들 까칠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막 20대의 문턱에 도달한 윤 씨의 앳돼 보이는 영정을 대하자마자, 이들은 오열을 멈추지 못했다.


동인련 회원들, 영정 앞에서 오열

회원 배모 씨는 "언제까지 동성애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계속돼야 하느냐"며 흐느꼈다. 파리해진 이들의 얼굴에는 어린 한 후배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를 죽음으로 내몬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후배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 한번 더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이들의 등은 더욱 서럽게 출렁였다.

특히 26일 오후 3시께 윤 씨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정욜 대표는 차분하게 회원들을 다독이고 있었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정 대표는 "윤 씨는 지난해 말부터 동인련 게시판에 좋아하던 시조를 올리고 행사에도 가끔씩 참여하기 시작했었다"며 "얼마 전부터는 활동에도 좀더 활발히 참여하고 늘 밝은 표정이어서 자살할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차가운 시신이 된 채 누워있는 윤 씨의 곁에는 24일자로 작성된 여러 장의 유서와 사진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윤 씨가 자살을 차분히 준비해 왔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유서에 죽음 택한 안타까운 사연 담겨

유서에는 온갖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한 동성애자의 애끓는 절규가 담겨 있었다. 윤 씨는 "죽은 뒤엔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윤○○은 동성애자다라구요.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고 그로 인해 고통받지도 않아요"라며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윤 씨는 또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이고 반인류적인지..."라며 동성애자를 죄악시하고 소외시켜 결국 죽음의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분노를 토해냈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던 윤 씨는 동성애를 죄악시하고 '하느님의 자녀'로도 받아들여주지 않는 보수 기독교단체들에 대해 동성애자를 죄악시하는 것이야말로 '반성경적'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럼에도 윤 씨는 신앙의 끈을 놓치지 않고 동인련에 기증했던 십자가와 성모상을 잘 간직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하느님께서 동인련에 축복을 내려주실 거예요"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자살시도 안해 본 동성애자 없을 것"

한편, 윤 씨의 소식을 접한 여성 동성애자인 박수진 씨는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자살을 '선택'했을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면서 "동성애자들 중에 한두 번쯤 자살 시도 안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주위에 의논할 사람도 하나 없는데다 동성애자임이 알려질 경우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공포에 짓눌리다 결국 자살을 시도하는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성 정체성을 자각한 뒤 자신을 혐오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구조 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씨는 또 "동성애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동성애자임이 드러날 경우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전학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사례도 허다하"며 "심지어 아웃팅(본인의 동의없이 동성애자임을 폭로하는 행위) 위협을 당해 돈까지 빼앗겨도 가족들에게조차 알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정 대표 역시 "윤 씨가 지난해 자의로 커밍아웃 한 뒤 많이 힘들어 고등학교를 그만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동성애자 차별철폐 위해 애써줘요"

윤 씨는 동인련 선배들에게 "형, 누나들의 수고가 다음 세대의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 잊지 마세요"라며 동성애자 차별 철폐를 위해 계속 힘써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윤 씨가 비록 스스로 목숨을 끊기는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차별받지 않고 멸시당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어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8일 장례를 마친 동인련은 윤 씨의 죽음을 한 개인의 죽음으로 덮는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 추모 사업과 함께 동성애자 차별 철폐를 위한 노력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인권․사회단체들도 윤 씨의 죽음을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가져온 '사회적 타살'로 규정, 동성애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에 각성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