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자진 출두한 한총련 수배자가 결국 구속돼, 지난 달 대검이 밝힌 수배해제 방침이 최소한의 유의미성마저 잃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일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해제를 위한 모임'(아래 수배자모임) 대표 유영업 씨(97년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는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자진 출두했으나, 이적단체 가입·이적표현물 발간 등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에 앞서 18일 수배자모임은 불구속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던 총학생회장 등 핵심간부 수배자들까지 포함해 20일부터 9월초까지 출두 투쟁을 벌이되 시기와 방식은 지역과 학교별로 판단하도록 했다. 수배자모임 송용한 씨(5기 한총련 지역간부)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전원 수배해제와 한총련 합법화 여론을 형성하고자 했던 것"이라며 자진 출두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20일에는 유 씨와 함께 5기 한총련 간부 송승훈 씨와 이현주 씨 등 김영삼 정권 시절에 수배된 7년차 장기수배자들이 관할 지검에 자진 출두했다.
유 씨의 구속에 대해 송용한 씨는 "자신들이 발표한 수배해제 조처의 취지를 검찰 스스로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유 씨가 수배자모임의 대표이고 최장기 수배자로서 상징성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발표 취지에 충실하게 처리됐어야 옳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5일 대검의 방침에는 유 씨처럼 불구속 수사 대상에서 배제된 수배자들도 자진 출두하면 '최대한의 관용조처'가 약속돼 있었다. 21일 검찰에 출두할 예정이었던 송 씨는 "유 씨를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수배해제 조처의 유의미성 판단과 자진 출두 등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민가협 채은아 총무도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다른 수배자들이 어떻게 자진 출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97년에 이미 사전구속영장이 나와 있었다고 해도 대검 발표의 취지에 맞게 조사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구속취소 조치를 통해 조속히 신병을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직 출두하지 않은 수배자들에 대한 검거와 수사 과정에서의 탈퇴서 강요도 여전하다. 지난 12일 경상대 수배자 이호종 씨(2002년 총학생회장)는 경남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 자진 출두한 뒤 조사 받고 다음 날 불구속으로 풀려났다. 이 씨는 "수사관이 불기소 처분을 미끼로 한총련 탈퇴서를 쓰도록 회유했으나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16일에는 지난해 국민대 총학생회장 한모 씨가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열린 '미국반대 한총련 탄압 중지 인간띠잇기' 행사 참석 중 연행돼 18일 구속됐다. 한 씨도 한총련 탈퇴서를 강요받았으나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학교 앞에서 연행된 한국외국어대 강길수(2002년 부총학생회장) 씨의 경우는 불구속 수사 대상이었지만, 앞으로 한총련 관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비활동각서'를 강요받았다. 강 씨는 "대검 발표와 다르다고 항의했더니,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궁색한 답변이 나와 어이가 없었다"며 "이름만 다르지 탈퇴서와 다를 바 없다는 판단으로 각서를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심'을 꺾는 탈퇴서 강요가 계속되자, "기존 전향서 개념의 탈퇴서 제출을 전제하지 않는다"던 대검 발표의 진의가 의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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