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열화우라늄탄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라크전쟁은 명백히 불법이며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화우라늄탄은 전쟁의 참혹성을 증거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이번 전쟁이 인간의 삶과 환경에 얼마나 지속적이고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이라크전과 열화우늄탄으로 인한 피해"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미국 평화운동가 새라 플라운더스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인권단체 평화권모임과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걸프전과 발칸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이어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그것도 인구밀집 지역에 대량 투하된 열화우라늄탄의 비인도적 성격이 집중 조명됐다.
열화우라늄탄은 원자력발전소 운영이나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원료를 얻기 위해 천연 우라늄을 농축하는 과정에서 생긴 우라늄 찌꺼기로 만든 무기이다. 일종의 핵폐기물이라고 볼 수 있는 열화우라늄탄은 미국의 핵산업계와 군수산업계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개발, 생산되고 있는 대표적 무기로, 91년 걸프전 당시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된 이래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서 잇따라 사용되면서 파괴력을 뽐내고 있다.
미 핵산업계와 군수산업계의 합작품
평화인권연대 손상열 상임활동가는 "전문가들은 이번 이라크 전쟁 기간에 미군과 영국군에 의해 사용된 열화우라늄탄의 양이 1000톤에서 최고 2200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특히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는 인구밀집 지역에서 전투가 발생해 방사능으로 인한 오염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걸프전에서 사용된 300여톤에 비해 최고 7배를 넘는 양이다.
걸프전 비해 최고 7배 넘게 사용돼
미 육군환경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사용된 열화우라늄탄 한발을 손에 쥐게 되면 단 한 시간만에 연간 방사능 노출 한계치의 두 배에 달하는 약 200렘에 노출되게 된다. 이에 따라 열화우라늄탄은 각종 암과 면역체계의 파괴, 만성피로, 피부질환, 유전자 돌연변이에 따른 기형아 발생 등을 불러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행동센터 공동 사무국장 새라 플라운더스 씨는 "91년 걸프전에 참전했던 7만여명의 미군 중 절반 가량이 대부분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이라크 보건부의 조사 결과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서 암 발병율이 5-6배 증가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면서 "열화우라늄탄이 낳는 비극은 전투원과 민간인,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열화우라늄탄은 모두를 겨냥한다
플라운더스 씨는 또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 국방부가 놀랍게도 열화우라늄에 오염된 장비나 지역에 75m 이내로 접근하는 사람에게 호흡기나 피부를 보호하는 장비를 착용하도록 하는 내부 지침을 마련해 두고 있다"면서 이러한 내부지침이야말로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을 미 정부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유엔환경계획이 지난 4월 열화우라늄탄의 사용 여부와 오염 상황을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은 조사를 거부했으며, 열화우라늄탄에 의해 남겨진 잔해물을 제거할 계획도 미국에게는 전혀 없다"면서 더 큰 희생을 방치하고 있는 미국의 방침을 강력히 비판했다.
미 내부지침, 열화우라늄 위험성 고백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주한미군 역시 열화우라늄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 양이원영 부장은 "2001년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이 보낸 질의에 대해 주한미군이 '한국에 열화우라늄탄이 있기는 하지만 위험성도 없고 훈련에 사용하지도 않는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낸 적이 있다"며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도 열화우라늄탄 보유"
이에 대해 플라운더스 씨는 "98년 오키나와에서는 광범위한 저항이 일어나 당시 주일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열화우라늄탄이 결국 제거된 적이 있으며, 열화우라늄탄이 실험 발사돼 왔던 푸에르토리코 비에케스 섬에서도 미군철수운동이 전국민적으로 전개돼 올해 미군이 철수하기에 이르렀다"며 "저항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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