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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비엔나 세계인권회의 이후 10년의 고찰

<기고> '비엔나+10 아시아지역 민간단체회의'를 다녀와서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아시아지역 민간단체회의(Asian NGOs Consultation on Vienna+10)가 지난 12월 15-16일 이틀에 걸쳐 태국 방콕에서 개최됐다. 이번 회의는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에서 채택되었던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 그리고 아시아지역 준비회의에 앞서 1993년 3월 민간단체들이 모여 개최한 아시아태평양인권회의에서 채택된 방콕NGO선언 등에 비추어 지난 10년간 아시아지역 인권운동의 성과와 향후의 과제를 확인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지난 10년의 성과와 반성

비엔나 세계인권회의는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응하여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분성, 인권·평화·민주주의의 상호의존성을 명확히 개념화하고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설정함으로써 이후 본격적인 국제인권운동의 발전 기반을 마련한 회의였다. 이 회의의 성과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바로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이다.

이번 방콕 회의에 모인 130여명의 참석자들은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각국의 국가인권위원회, 국제형사재판소 등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탄생시키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초석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반면,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을 국내적으로 이행하려는 각국 정부의 의지가 매우 미흡하였으며, 유엔 차원에서도 지속가능개발정상회의, 사회개발정상회의 등을 비롯한 각종 국제회의가 개최되고 이들 회의에서 별도의 선언 및 행동계획들이 경쟁적으로 채택되면서 정작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에 대한 후속조치 논의는 그리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의 모든 논의과정과 선언 및 행동계획의 문구 하나하나에 온갖 열정을 쏟아 부었던 민간단체들 역시 그 동안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 방콕NGO선언의 내용을 끊임없이 인용하고 이행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아시아 공동의 과제와 도전 재확인

참가자들은 또 주제별·지역별 부문토론과 전체회의를 통하여 아시아지역의 현 인권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나 그 내용의 대부분이 이미 1993년 방콕NGO선언을 통해 아시아지역 공동의 인권과제로 확인되었던 내용들이어서 참가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 자리에서 확인된 인권과제로는 △정부와 국제금융기구 등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빈부격차 및 불평등의 심화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등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침해하는 보안관련 법제 및 관행의 지속 △핵무장, 군비증강 등으로 인한 인간안보와 인권에 대한 위협 △9·11 이후 반(反)테러조치라는 미명 하에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자행되고 있는 민간인에 대한 인권침해와 폭력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라고 불리는 인권의 특수성과 국가주권 등을 내세우며 인권의 보편성을 침식시키려 하는 아시아 각국의 태도가 지역 내 인권보장을 훼손하는 가장 크나큰 장애로 지적됐다. 또한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로 인해 아시아지역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지역 내 연대활동의 연속성 부재

이번 방콕 회의는 1993년 당시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나 아시아태평양인권회의에 직접 참여하여 논의를 주도했던 주체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하였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아·태인권단체촉진팀(Asia Pacific Human Rights NGO Facilitating Team) 등과 같이 비엔나회의의 후속활동을 위해 조직되었던 아시아지역 연대체의 활동과 그 해소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지역 내 네트워크 강화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도 마련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그 동안의 국제인권운동의 역사에서 한국 인권운동이 서있는 자리를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과 방콕NGO선언이 여전히 유효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내용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그 이행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우리 인권활동가들의 역할임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번 회의를 주최했던 포럼아시아(FORUM-ASIA)의 솜차이 홈라르 사무총장의 폐회사처럼 이번 회의가 "지난 10년을 마감하는 자리가 아니라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자리"가 되었기를 바란다. [김기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