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만남> 지문날인 거부 고등학생 이가빈 씨

"지문날인 안 하고 주민등록증 받을래요"


천안에 있는 한 고등학생이 국가권력의 폭력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가빈(17). 지난 12일 동사무소를 찾아가 주민등록증을 신청하면서 지문날인을 거부한 가빈 씨는 현재 지문날인 강요에 대한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주민등록증 발급통지서를 받아 든 가빈 씨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설렘이 앞섰다고 한다. "그런데 열 손가락 지문을 날인해야 한다는 통지서의 글을 보고 동사무소에 가서 지문날인을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나빠졌어요." 가빈 씨는 고등학교 1학년 사회교과서에서 지문날인제도와 지문날인을 반대하는 운동이 있다는 걸 배웠던 게 생각나 인터넷을 검색해 지문날인반대연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헌법소원 한 사람이 없으면 제가 한번 해볼까요?" 그렇게 가빈 씨는 용기있는 글을 남겼다.

무려 37년간 계속되어 온 열손가락 강제 지문날인제도는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그 반인권성이 수 차례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생애 최초로 지문날인을 하게 될 주민등록증 신규 발급자 가운데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나선 주체는 여지껏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가빈 씨의 헌법소원은 지문날인반대운동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평범한 고등학생인 가빈 씨가 지문날인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나쁜 제도가 있으면 바꿔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웠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게 단지 입시만을 위한 것은 아니잖아요? 생활에서의 자세로서 배운 거니까 그런 걸 실천하는 자세로 세상을 좀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모두 다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가빈 씨는 앞으로 지문날인을 해야 하는 친구들에게도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부모님의 반대가 없었냐는 우려 섞인 질문에 가빈 씨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친구들도 헌법소원 잘 해서 지문날인 안 하게 해달라며 지지해줘요."

가빈 씨는 미국의 외국인 입국자들에 대한 지문날인 실시에 대해서도 분개했다. "미국에서는 범죄자만을 대상으로 지문날인을 한다고 알고 있는데, 우리에게 지문날인을 강요하는 것은 범죄자와 똑같이 취급하는 것 같아 매우 기분이 나빠요. 정부가 미국정부에 항의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가빈 씨는 "헌법소원 잘 돼서 법이 고쳐지고 친구들도 모두 다 지문날인 안하고 주민등록증을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래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가빈 씨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