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성별, 장애 등을 이유로 고용 등 다양한 차별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면서 피해자 구제 절차를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최초의 종합적인 차별금지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과 함께 성적지향 등 다수의 차별사유를 제외함으로써 차별금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또한 존재해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그동안 반차별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이 과연 다양한 ‘소수자들’의 차별 현실을 바꾸고 반차별 의식을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점검한다. <편집인주>
현재 보수적 교수, 보수 기독교 세력과 동성애자, 성소수자 운동진영은 차별금지법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약 3년 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여러 전문가, 단체들의 의견을 모아 차별금지 권고법안을 만들고 2006년 7월 국무총리에게 입법을 권고했다. 그리고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정부안(법무부 안)의 의견을 지난 10월 22일까지 받았다. 의견서 마감 시한이 다가오자 특히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동성애차별금지법’의 통과를 막겠다”, “‘동성애반대국민본부’를 만들어 대응하겠다.”, “동성애에 관한 법률적인 모든 도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것” 등의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지난 10월 24일에는 군대에서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동성애자 병사의 끔찍한 인권유린 사건이 폭로되었다. 자대 배치 후 40여 차례가 넘는 지속적인 성희롱, 성추행을 당했음에도 군대는 가해자 조사나 처벌이 아니라 피해자의 성정체성을 문제 삼았다. 피해자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4차례나 자해를 감행했고 현재 대학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다.
두드러지는 이 두 가지 사건으로 동성애자, 성소수자 운동진영은 차별대응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평등의 가치를 보편적 인권의 이름으로 추구하며 차별을 막으려는 법안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한편 실제 끔찍한 차별사건이 발생하여 대응하는 무언가 아이러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자 차별의 현실
동성애자인권연대 상담 사례와 차별대응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는 한국사회 동성애자 차별의 현실은 한마디로 비참하다. 우선, 학교 공간에서 성정체성을 고민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결정한 친구들은 학교에서 왕따, 언어,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교사에 의해 부모에게 아웃팅(타인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짐)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학, 자퇴권고, 퇴학을 당하고 있다. 이성애자가 아닌 성정체성을 가진 청소년들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학습 받아야 할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로 인해 13~23살 청소년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서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강병철, 하경희, 2005년)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0% 이상이 자살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있고, 45.7%가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는 문제 해결을 고민하기보다 학교에서 동성애자들을 색출하고 있다.
앞서 말한 군대 내 동성애자 차별의 사례를 비롯해 군대는 제도적으로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있다. 군형법 92조는 “(동성애 행위를 닭에 비유해 폄하하는 말인) 계간(鷄姦)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징병신체검사 검사규칙은 동성애를 ‘성주체성 장애, 성적 선호장애’로, 군인사법 시행규칙 56조 4는 동성애를 ‘변태적 성벽자‘로 규정하고 차별을 합리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 2월 한 동성애자 병사는 강제로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했고, 성정체성을 밝히라며 성관계 사진을 요구받는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해야 했다.
경제생활을 하는 동성애자도 편견과 차별의 현실 앞에 스스로 움츠릴 수밖에 없다. 한 여성 직장인은 자신의 성정체성이 알려지자 계속 지방으로 옮겨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 두라는 소리라고 파악한 이 여성은 스스로 직장을 그만 두었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관계없이 성정체성은 고용, 승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연예인 홍석천 씨는 자신의 성정체성이 밝혀지는 아웃팅을 당하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해고되었다.
이렇듯 학교, 군대, 직장에서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생명 혹은 생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
2006년까지 우리사회 현행법 중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법은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모두 28종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차별관련 법률이 특정 분야에 한정되거나 미흡한 구제 절차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차별시정을 위한 적극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마련된 차별금지법은 성적지향은 물론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 신체조건 또는 정치적 의견,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고자 하는 법이다. 특히, 간접차별의 개념으로 성별, 장애, 인종, 출신국가, 출신민족, 피부색,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괴롭힘을 차별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한 것은 차별 피해의 대다수가 사회적 약자이고 그 중에서 동성애자, 성소수자들은 어떠한 법에서도 보호받고 있지 못하기에 마땅히 필요한 부분이다.
차별의 현실을 드러내고 보편적 인권 감수성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
차별은 사회적 갈등의 중요 요인으로 작동하며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동성애자,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언어, 신체적인 폭력 등의 ‘혐오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2004년도 실시된 차별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는 장애인, 학력, 학벌,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그리고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차별로 꼽았다(박수미 외(2004) ‘차별에 대한 국민의식 및 수용성 연구’).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서 출발해 몇 년에 걸친 준비 과정을 거쳐 준비된 차별금지법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교육, 제도, 법을 통해 헌법의 평등 이념을 실현하는 구체화된 실천이 담겨있는 법이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쳐 있는 법이 아닌 보편적 인권 감수성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을 삭제해야 한다’는 등의 논리로 일관하는 세력들은 이 사회구성원들이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과 ‘차별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분법적 착각에 빠져있다. 차별을 존재의 옳고 그름으로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치 화석화된 언어로 특정 존재를 재단하는 논리는 사회에서 지탄을 받을 뿐이다.
차별을 끊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
한국사회 동성애자, 성소수자 운동은 10년이 조금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존재를 긍정하는 방식을 찾기 위해 수면위로 올라온 동성애자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해 각인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차별의 현실을 알려왔다. 지금 형성되어 있는 차별금지법의 쟁점이 그저 ‘법’을 만드는 중요성만 강조하는 한계를 보일 수 있을 지라도 이후 동성애자, 성소수자 운동을 비롯해 반차별, 인권 운동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대응 활동을 통해 더 성장할 동성애자, 성소수자 운동을 눈여겨 볼 필요성은 충분하다.
덧붙임
◎ 장병권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