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씨의 피랍으로 거세게 일던 파병 반대 목소리가 김 씨의 죽음으로 더욱 절실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파병 철회 불가'를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다.
언론의 '이라크 국민 살리기'
22일자 <조선일보>는 '인질사건에 치밀하고 성숙한 대처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돕자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정부가 "우리의 이러한 선의와 파병 목적을 이라크 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충분히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은 미국이 벌인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팔루자에서 학살당한 이라크인과 이라크 포로에게 가해진 잔혹한 고문과 학대도 그새 잊고 '선한 목적으로 가진 한국군'이 미국의 동맹군으로 이라크에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만 명 이상 목숨을 잃은 이라크 민간인과 세계를 경악시킨 고문도 안중에 없고 이로 인한 이라크인의 적대감정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선한 뜻'만 우기고 있을 따름이다. 경제봉쇄를 시작으로 10여 년의 역사 속에 빚어진 '이라크 민중의 아픔'에 대한 인식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지난 1년 간의 단기적 상황만 파악해도 '파병이 선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처럼 '파병이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 일'이라는 주장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같다.
절대 굴하지 않는 천박한 '국익론'
<조선>은 또 친절하게도 파병에 대한 '정부의 원칙과 정신이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하며 "어떤 희생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예 추가 파병 자체를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추가파병을 결정한 이상, 이런 희생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된다. 이라크를 돕기 위한 파병이라는 <조선>의 강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인 김선일 씨를 희생하면서 이라크민중을 돕자'는 주장이 된다. 자국민을 희생하면서 남의 나라국민을 살리자는 이런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정부에 강권하고 있는 <조선>의 의도가 자못 궁금하다. 이에 반해 <중앙>의 사설은 노골적으로 '파병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은 '인질극은 국제적 분노 살뿐이다'는 사설에서 예정대로 파병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종합적 국익을 높이고 한국민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존심'을 언급하는 것 자체에 기가 찰 뿐이다.
첫 단추가 잘못 됐다
이번 사건의 발생 원인을 찾는 이들 사설의 분석은 자못 흥미롭다. 이후 테러위협까지 운운하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조선>은 '한국군의 선의를 이라크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라고 말하고, <중앙>은 정부의 '자국민 보호대책'의 미흡함에서 찾고 있다.
이들은 '파병과 추가파병의 결정'이 지금까지 혹은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고 '한국군에 대한 홍보 부족' '자국민 보호대책 미흡' 등의 근시안적 인식만을 늘어놓으며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 여론을 대변해야 하는 언론이 정작 여론을 등지고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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