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정보 이용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프라이버시권 보호 논의와 법적 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2일 인권위 11층 배움터에서 '유전자 정보,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우선 유전자정보에 대한 수집·분석·보관·폐기 등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인 문제점들이 제기됐다. 참여연대 시민과학 센터 김병수 간사는 "유전자정보는 일반 정보와는 달리 현재의 상태뿐만 아니라 미래의 상태까지 알 수 있는 민감한 개인정보"라며 "이것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거나 고용, 보험, 학교, 군대 등에서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몇몇 보험회사들이 임신한 피보험자들에게 그들의 태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하도록 압력을 넣고, 유전적 신체장애의 위험이 높은 태아의 경우 아이를 출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험 혜택을 철회하겠다고 협박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김 간사는 "의료분야에서 유전자 검사 시 기본적 동의절차조차 받지 않고 있고 진단목적으로 수집된 검체(DNA나 혈액)를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며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이 제정되기는 했지만 유전자정보에 대한 법적 규율이나 감독 체계가 미비하고 벌칙이 지나치게 경미하며, 관리·감독 공백이 커 유전자정보 보호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서는 수사기관에 의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아래 유전자 디비) 구축에 대한 인권침해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유전자감식실 이승환 과장은 "범인의 검거률을 높이기 위해 범죄자 유전자 디비 구축은 필요하다"며 "유전정보를 통해 범인을 검거하면 사건을 조기 해결할 수 있어 인력적·경제적으로 정부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김 간사는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 디비(범죄자나 미아찾기 등)를 구축할 경우 "수사기관에서 영장에 기초하지 않고 유전자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보관이나 폐기도 제대로 되지 않아 유전자정보의 오·남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2년 3월 경남 마산에서 강간·살인사건의 범인을 검거한다는 명목으로 반강제로 600여명의 용의자들에 대한 유전자 채취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건국대 헌법학 임지봉 교수는 "범인 검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범죄자 유전자 디비 구축은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과잉 제한으로 위헌"이라고 반박했다. 임 교수는 "범죄자 유전자 디비를 구축하지 않더라도 현행의 제도를 활용한다든지 경찰력을 대폭 보강하는 방법으로도 범죄자를 잡을 수 있다"며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더라도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 기본권은 제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유전자정보 수집 대상이 무한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났다. 민주노동당 윤현식 정책연구원은 "국가기관이 처음에는 감정에 호소하며 공포심리를 자극해 성폭력범과 같이 반인륜적인 범죄에 한해 유전자 디비 구축을 시도하지만 실효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유전자 디비 대상은 확대되고, 결국 입법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때는 강제적으로 전 국민의 유전자 디비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유전자 디비를 구축해 온 영국에서는 이미 그 대상을 전 국민에게로 확대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토론 과정에서 이승환 과장이 "유전자 디비의 생명력을 위해 어느 정도의 입력대상의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해 윤 정책연구원의 지적이 기우가 아님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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