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베일 속에 숨어 국민을 감시해 온 공안문제연구소의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경찰대학 부설 기관으로 1988년 설립된 이래 연구원들뿐 아니라 연구소장의 이름조차 기밀이었던 '비밀조직'이 바로 공안문제연구소다. 이들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며 한 짓이란 '좌익', '용공', '반체제' 등의 딱지를 붙여 기본권을 제약해 온 것이 최근 우리 사회를 분노케 하고 있다.
공안문제연구소가 불철주야 '사상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사찰한 '문건'은 매년 수천 여 건으로 지금까지 무려 8만여 건에 이른다. <태백산맥>과 같이 국민들에게 널린 읽힌 베스트셀러 소설들, <자본론> 등 세계적 철학자의 이론서, 심지어 교과서에 수록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도 감정 대상이었음에 기가 찬다.
뿐만 아니라 동화나 시, 가요, 언론 기사, 노동·사회단체에서 나온 자료들 그리고 공당인 민주노동당까지 이들은 몰래 감시해 왔다. 정치적 표현뿐 아니라 예술과 학문, 언론 등 일상을 낱낱이 해부하는, 그야말로 국민들의 머리 속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왔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공안문제연구소의 감정서가 국민의 내심을 판단해 처벌하는 고약스런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공안문제연구소의 '단골 고객'은 국민의 머리 속까지 캐고 헤집어 '좌익', '용공'을 덧씌워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만들기에 열을 올려왔던 경찰, 국정원, 기무사 등 공안기관이다.
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한다는 기만적인 이유를 들며 사실상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공안기관들은 독재정권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상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단어 하나조차도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공안문제연구소는 이들의 '목적 수행'을 완성시키기 위해, '처벌할 수 없는 대상'을 '좌익·용공'으로 감정해서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제조해주는 '꿈의 공장'과 같다.
공안문제연구소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22일 허성혜 행정자치부 장관은 공안문제연구소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증거물에 대한 감정서 발급'을 즉각 중단시키겠다고 미봉책을 내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그동안 '공안'의 논리를 앞세워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온 공안문제연구소는 마땅히 국가보안법과 함께 장사지내야 한다. 공안문제연구소를 지금 당장 해체하라.
- 2681호
- 2004-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