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 즐거운 물구나무 ◀ 여성의 이름으로

전범민중재판운동 여성총회 준비가 한창일 때, 이라크 여성증인으로 한국에 오기로 했던 지네 씨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못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를 대신해서 다른 이라크인이 오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는 지네 씨의 오빠였다. 그녀가 오지 못한 이유가 정말 어머니 때문일까?

"전쟁이후 이라크 여성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나요? 후세인 시절보다 자유로워졌나요?" 지난 금요일 서울증언대회에서 증인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안전합니다. 싸워야 하는 남자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과연 전쟁의 당사자는 남성이고, 전쟁의 참상은 남성에 의해서만 말해질 수 있는가? 여성이 전쟁을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한국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은 50여 년이나 긴 침묵을 강요당해왔다. 전쟁은 남성이 당사자이고, 남성만이 기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전쟁에서 여성들의 고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의 증언들은 왜 드러나기 어렵고, 오랜 시간 후에 말해질까? 아부 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포로가 가족에 의해 '명예살인' 당한 사건이 있었다. 전쟁에서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차별적 구조와 관습에 의해 침묵하기를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이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중단시킨다면, 우리는 이라크 민중의 무고한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라크 현지를 다녀온 이동화 씨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전쟁반대를 외치면서도 이라크 전쟁을 머나먼 나라의 일로 생각해왔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급해졌다. 하루라도 빨리…그런데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하는 것이 총성뿐인가. 치유되지 않은 것은 다시 더 심하게 곪기 마련이다. 이제는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야 한다. 집단적 주체로서 여성이 전쟁범죄를 고발하며,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이 새롭게 기록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진정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