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희망까지 삼킨다
"폭격으로 집이 부서졌지만 어쩔 수 없이 부서진 집에서 살고 있다. 물도 없고, 생활은 점점 힘들어지기만 한다." "전쟁이 일어난 후 일자리를 잃었다. 지금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 "미군이 한 나라를 망가뜨렸다." 8일로 이어진 전범민중법정에서는 영상을 통해 전쟁 피해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그러나 장경욱 변호인은 '무차별 폭격, 대량살상무기 사용, 민간인 공격 등의 전쟁범죄'에 관한 심리에서 "전쟁의 성패는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떻게 적의 전의를 조기에 꺾고 항복시킬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다"며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많은 이라크 부대들이 조기에 항복해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작전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이에 이라크에 다녀온 증인 이동화 씨('평화바닥' 활동가)는 "'충격과 공포' 작전이 끝난 후에도 민간인들의 피해는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며 변호인의 말을 부정했다. 이 씨는 "지난해 8월과 11월에 미군이 이라크인들의 결혼식장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 온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미군이 무차별적으로 폭격한 열화우라늄탄으로 인해 바그다드 티그리스강 주변의 관공서 지역은 일반 지역보다 방사능 수치가 천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미군은 이번 전쟁에서만 1100∼2500톤의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상희 기소대리인은 "미국이 1991년 걸프전에서 열화우라늄탄을 처음 사용한 후 이라크에서의 암발생율은 1989년 2만7천여 건에서 1994년 4만1천여 건으로, 선천성 기형 발생율은 1989년 674건에서 1994년 2386건으로 급속히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열화우라늄탄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은 후대로 갈수록 피해를 더해간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이어 '전쟁과 점령으로 야기된 이라크인의 고통'에 관한 심리에서 기소인 최용준 씨(의대 강사)는 "이라크는 1차 걸프전 이전에만 하더라도 상당한 보건의료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지금은 암환자에 대해 아무런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기소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김학웅 변호인은 "미국에 적대정책을 취함으로써 경제봉쇄를 당한 이라크 정부의 책임이 크다"며 "실제 전쟁으로 인한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증인 우석균 씨(의사)는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시리아, 이란보다 이라크의 상황은 훨씬 좋지 않다"며 "경제봉쇄로 이라크의 보건의료체계가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라크전 이후 더욱 급속히 악화됐다"고 설전을 벌였다. 이라크인 하이셈 카심 알리 씨(의사)도 증인으로 나서 "전쟁이 일어난 후 병원은 거의 파괴됐고 이라크에서 약을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며 "이제는 의료진이 병원으로 출퇴근하는 것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지경"이라고 전했다. "전쟁 후의 재건 활동이 이라크인들을 돕고 있지 않느냐"는 김 변호인의 질문에 대해 하이셈 씨는 "미국과 영국이 말하는 '재건'은 미·영 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라며 "최근 이라크에서 석유 산출량은 늘어났지만 이라크인들은 오히려 석유부족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2003년 5월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초등학생들의 84퍼센트는 "어른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하이셈 씨 역시 "현재 이라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라크 사람들이 스스로 희망을 잃어 가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틀째를 맞이한 '전쟁은 끝난다. 우리가 원한다면-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에는 첫 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