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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산업연수제 10년이 남긴 것

"노예의 삶 강요하는 연수제 폐지하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저녁 8시 정도까지 일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농장 주인이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을 돌봐야 한다. 심지어 일이 없으면 다른 농가에 파견돼 일을 해야 한다. 식사도 제때 주지 않기 때문에 늘 배가 고프다." 중세의 봉건 영주에게 귀속된 농노의 노예적인 삶과 흡사해 보이는 이 이야기는 바로 2004년 현재를 살고 있는 산업연수생의 처참한 현실이다.

12월 18일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을 기념해 '이주노동권실현을 위한 연대행동'은 16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산업연수제 10년이 남긴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굴레와 참담한 인권 현실뿐이라며 연수제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91년부터 시행된 산업연수제가 오히려 연수생들에게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인 족쇄로 작용하는 상황은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이철승 소장은 "'산업연수'라는 취지만 있을 뿐 한국 정부는 연수제를 통해 편법적으로 외국인력을 들여와 헐값에 노동력을 보충하는 수단으로 악용해 왔다"고 지난 10년을 진단했다. 연수생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국내 노동관계법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다. '연수' 목적으로 왔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연수생들이 사업장을 '이탈'해 불법체류자라는 불안정한 신분을 선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 이 소장은 "연수기간 내내 하루 12시간씩 부려먹으며, 작업장에서 버튼 하나 누르는 것이 무슨 기술연수냐"며 "연수제는 합법을 가장해 차별적인 근로조건과 대우를 강요하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빼앗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에 법무부 입국심사과 이규홍 사무관은 "연수생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례가 있으면 무조건 법무부에 신고해 달라"는 선심성 말만 되풀이했다. 앞서 법무부는 11월 29일 '연수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연수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을 뿐 추천업체와 연수업체에게 특혜만을 안겨주는 연수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개선책을 제시하지 못해 이주노동자 관련 인권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아 왔다.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에 대해서도 뜨거운 논쟁이 진행됐다.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고기복 사무국장은 "정부의 합동단속 이후 10만 명이었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현재 18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강제추방 정책은 실패한 것"이라며 이들을 모두 합법화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무부 이 사무관은 "호주나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의 전문인력을 도입하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올바르지만 단순노무인력을 합법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토론자로 참석한 한겨레 홍세화 논설위원은 "인권을 보장해야 할 법무부가 오히려 선진국과 후진국에 대해 이중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며 인권의식의 부재를 꼬집었다.

한편, 연수생이었던 바사라트 알리 씨와 에르가쉐브 박호디르 씨는 지난 8월 "연수제가 행복추구권,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청은 11월 "연수제는 합헌적인 제도이므로 기각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한 상태다. 노동부 또한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있지만, 노동부의 예규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