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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천성산을 죽일 셈인가

거대개발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고속철도(KTX) 공사가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살아 있는 모든 생명과 삶의 터전을 앗아가고 있다. 생명을 내어놓고 87일째 천성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하며 단식을 벌이고 있는 지율 스님도 자본의 개발 논리 앞에 파괴되고 있다. 도룡뇽을 비롯한 뭇 생명들과 천성산의 물과 공기를 마시며 더불어 살아왔던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는 개발의 주체가 되어버린 거대한 국가권력 앞에 무기력해지고 있다.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되뇌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경제개발! 지역발전! 국토개발! 고도성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개발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농업·공업용수로 맑은 물을 공급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시화호 사업은 이미 그 답을 내놓고 있다. 의사 결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채 거수기로 전락해 어업 등의 생계의 터전을 빼앗겼던 주민들, 주변 도시의 인구 및 공장 증가로 오염 물질이 대량 유입되면서 설계 및 시공상의 문제점까지 겹쳐 '썩은 물이 넘실대는 죽은 호수'로 변한 시화호는 결국 개발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인간 안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소수 건설자본의 이익 뒤로 내팽개쳐졌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더불어 숨쉬며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천성산 관통 공사를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모두에게 돌아가야 할 개발의 혜택도 차별적으로 주어진다. 고가의 이용료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고속철도는 그저 꿈의 철도에 불과하며, 장애인들의 접근권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로 이들은 이용 자체를 제한 당했다. 고속철도 운행으로 인해 다른 열차의 배차 간격이 길어져 가난한 이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한다. 반면 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재앙은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개발이 가져다 준 '빠름'은 노동자들에게 '여유'가 아닌 더 많은 일을 수해 낼 것을 강요하고 있다. 마구잡이식 공사는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고,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한 이들은 새로운 생계 방식으로 전환하는데 실패해 생존권의 위협에 놓여 있다.

이러함에도 정부는 여전히 경제적 손실만을 내세우며 '상생의 길'을 모색하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21일 지율 스님은 단식 해제 조건으로 △발파공사를 제외한 토목공사만을 진행 할 것 △3개월간 공동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것을 제시했다. 천성산 관통 공사가 가져올 비극을 고려할 때 '상생의 길'이란 정부가 당장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길뿐이다. 또한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 반대 투쟁이 거대한 권력과 지율 스님의 싸움으로 되지 않기 위해, 법정 다툼 싸움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다시금 촛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도 손에 손에 촛불을 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