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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인 인권침해 ‘강제퇴거’, 더 이상은 안 돼!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토론회 열려

용산참사를 낳았던 강제퇴거,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강제퇴거는 ‘합법적 개발사업’의 한 절차로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참사 2주기를 앞두고 더 이상의 용산은 없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들이 모였다. 1월 18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는 반인권적 퇴거조치를 더 이상 합법이 아닌 위법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개발 사업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 ‘사람’의 자리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동안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 개선위원회 등이 함께 준비해온 강제퇴거금지법은 인권으로서 주거권을 법제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국제인권규약에서는 “강제퇴거를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규정하면서 강제퇴거를 예방하기 위해 입법조치의 채택을 비롯한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해야 할 정부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그러나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여전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참사현장인 남일당 건물을 철거함으로써 흔적 지우기에 급급한 이 정부에 무얼 더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용산참사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생색내기용에 불과했다. 상가세입자의 영업 손실 보상을 3개월에서 4개월로 1개월분 늘렸지만 이것이 새로이 생계수단을 마련할 수 있는 대책은 되지 않는다. 분쟁조정기구를 설치했어도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정보는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가옥주(건물주)에 세입자 보상 부담을 지우면서 계약이 중도에 해지돼 당장 내일을 어디서 어떻게 살지 막막한 상태로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 이미 서울시의 반에 해당되는 면적이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데도 정비대상지역 지정기준을 완화(2010.7.15.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하면서까지 더 많은 곳을 더 빠르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발관행이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용산참사에 대한 우려는 단지 말이 아닌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기에

사람은 없고 돈(개발이익)만 있는 개발 현실을 뒤집어야 한다는 게 강제퇴거금지법을 세상에 내놓으려는 이유이다. 주발제를 맡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강제퇴거금지법의 주된 내용을 소개하면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의 배경이며 개발 사업에서의 인권 보장, 즉 ‘합법적인 인권침해’를 위법한 것으로 만들자는 것이 그 취지”임을 강조했다. 미류 활동가는 “강제퇴거와 관련해 입법조치야말로 효과적인 권리보호제도의 본질적 근간”이라며 강제퇴거금지법의 제정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명] 1월 18일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토론회 모습

▲ [설명] 1월 18일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토론회 모습



강제퇴거금지법에는 국내법에서 충분히 자리 잡히지 않았던 주거권의 개념을 명시하면서 모든 사람이 강제퇴거로부터 보호받고 재정착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제2조) 강제퇴거금지법은 제4조(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통해 개발사업과 관련된 퇴거나 철거 등에서 다른 법률보다 이 법을 우선하도록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들로 하여금 법령이나 자치법규를 제‧개정할 때 이 법에서 정한 기본 이념과 원칙에 부합하도록 했다. 또한 이 법에는 강제퇴거의 금지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제6조) 강제퇴거를 예방하고 재정착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밝히며(제5조) △무분별한 개발 방지 △거주민의 의견 수렴 △재정착 대책의 협의 △거주민 지원 및 상담을 개발사업 시행의 원칙으로 담았다.(제7조) 개발 사업이 거주민들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만큼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강제퇴거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해 인권영향평가 실시를 의무화했다.(제8조) 물적 보상 일부로 제공되는 현행 재정착 대책의 문제를 짚으며 재정착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재정착 대책 수립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제9조) 개발 사업에서 퇴거를 요청할 때 갖춰야 할 요건들을 규정하면서(제10조) 강제퇴거가 더 이상 개발 사업에서 합법적인 인권침해행위로 자리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 다른 발제자인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용산참사는 주거권,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권조차 허용하지 않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더 이상 재정비 과정에서 용산참사와 같은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남은 자의 의무”임을 강조했다.

변창흠 교수는 정비사업 현황 분석을 통해 ‘과도’, ‘과속’이라는 한국사회의 개발 관행이 공간적 불균형의 심화, 저렴주택의 멸실, 주택시장의 불안정이라는 문제를 낳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어 ‘국민이 아니더라도 모든 도시거주자와 도시이용자가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의 도시권 개념을 소개하면서 “‘사람’과 ‘지역’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하면서 재정비사업이 추진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 주민들의 권리와 참여가 보장되고 공공부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강제퇴거를 금지하기 위해 가능한 법률의 제‧개정 방안으로 △직접적으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주거기본법 제정에서 이를 원칙으로 명기 △토지취득보상법 개정에서 보상을 통해 보장 △경비업법이나 행정대집행법 개정에서 강제퇴거 금지 등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의 쟁점은 강제퇴거를 금지하고 주거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어떻게 ‘법의 언어’로 담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서종균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이은희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병덕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하여 강제퇴거금지법에서 담고자 하는 원칙의 의미, 임차인 퇴거에 관한 현행 법제, 용산참사 이후 국회에 계류 중인 여러 개정법안의 내용들, 강제퇴거 조치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 해외 판례 등을 이야기했다.

사람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강제퇴거금지법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여러 넘어야 할 봉우리가 많다. 사회권을 사법의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인권의 대전환이며 여전히 논쟁적인 지점이 있다. 법제도적 쟁점 뿐 아니라 강제퇴거금지법이 맞닿은 가장 큰 벽은 재산권이다. 게다가 개발사업 제도는 매우 복잡해 이해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강제퇴거금지법안을 보더라도 각종 개발관련법령인 행정법들뿐만 아니라 민법이나 형법이 다루는 각종 규정과의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 구청과 시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도 세분화해야 하고, 재정착의 원칙은 밝혔으나 거주민들의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하여 차별이 없도록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나갈 필요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법안의 과제는 아니지만 관련 법령의 개정과 더불어 법 제정 운동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제2, 제3의 수많은 용산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앞서 현재 철거싸움 중인 ‘또 다른 용산’ 7개 지역에서 진행했던 강제퇴거감시단 활동 보고가 있었다. 여전히 세입자는 자신이 살고 생계를 영위하는 이 동네가 언제, 어떻게 개발하는지 알지를 못한다. 수 십 년 거주했어도 소유하지 못한 ‘죄’로 완전히 배제된다. 명도집행에 대한 사전고지가 없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처참히 부서진 삶의 터전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는다. 폭력을 휘두르는 용역깡패들을 지자체와 경찰은 사적인 분쟁이라며, 합법적인 거라며 오히려 비호하고 나선다. 보상이 주어져도 마땅한 대책이 되지 않는다.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아도 비용 감당을 할 수 없어 포기해야 하거나, 영업손실액 얼마로 다른 곳에서 새롭게 생계를 꾸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던 용산의 절규가 제2, 제3의 수많은 용산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들이 기억하는 한 마디,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은 어떤 형태로든 강제퇴거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할 이유 그 자체이다. 더 이상 야만의 시대로 폭주하지 않도록 제동을 걸 몫은 용산참사 2주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