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지난 2003년 부안 핵폐기장 설치 반대 시위 도중 발생한 경찰의 과잉진압과 폭력행위에 대해 책임자 처벌과 피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21일 인권위는 경찰청장과 전북지방경찰청장에게 △과잉진압 및 폭력행위를 한 경찰관과 지휘책임자를 자체 조사해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문책하며 △불법압수수색 집행 담당자 및 지휘 책임자에 대해 주의조치하고 △채증조 운영 및 그 지휘책임자에 대해 주의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또 전북지방경찰청장에게 "폭력시위에 가담하지 아니하였음에도 시위진압과정에서 부상을 당하여 치료 등을 받은 피해자"에 대하여 치료비 등의 손해를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전북지방경찰청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시행하며 △경찰청장 훈령인 '체증활동규칙'을 개정해 경찰관의 불법행위도 의무적으로 채증하고 △3급 비밀문서인 이 규칙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할 것을 권고했다. 또 인권위는 피해주민 가운데 38명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에 법률구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시위진압은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먼저 인권위는 2003년 7월과 11월 부안 일대에서 벌어진 시위가 "과격한 폭력 양상으로 전개된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에 대해 경찰이 "일정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시위진압 중 일부경찰이 방패로 주민을 가격하고, 경찰봉으로 집단폭행 하는 등 강경·폭력진압을 함으로써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된다며 "급박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필요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공무수행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즉 경찰의 행위가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되지만 필요 이상의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함으로써 '수단의 정당성'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
인권위는 같은해 11월 22일 부안대책위의 8개 읍·면 단위 사무실과 3개 농민회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당시 영장에는 야간집행이 가능하다는 기재가 없음에도 영장 집행이 일출 전인 6시30분∼7시경 이루어졌으므로 형사소송법 제125조의 야간집행금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의 불법도 채증해야"
경찰이 시위대에 대해 으레 행하는 촬영, 녹화, 녹음 등의 채증행위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부안 주민은 2004년 2월 24일까지 주민 38명이 구속되는 등 124명이 사법처리 됐으나 경찰은 "(시위대의) 불법행위에 대해 정당한 방어 차원에서 (경찰이) 대응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으나 주민들을 폭행하는 상황은 없어서 경찰의 불법행위에 대한 채증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경찰이 "채증조를 운영하면서 경찰의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채증하지 아니하고 일방적으로 주민들의 불법행위만을 채증하여 사법처리의 자료로 활용"했다며 경찰관의 불법행위도 채증하도록 했다. 실제로 경찰은 △2003년 11월 20일 촛불시위 마무리 연설 중 경찰에게 안면부를 구타당한 황 아무개 목사 사건에 대해 "폭행한 대원이 몇 중대인지 명확히 밝혀낼 수 없어 조치가 불가능해 내사 중지"하고 △2003년 11월 19일 서해안 고속도로 시위 과정에서 연행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문화방송(MBC) <PD수첩>에 방영되자 가해자인 전경대원과 책임자를 징경계했을 뿐 다른 사례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권위 결정문에 인용된 경찰 측 자료에 따르면 당시 경찰 채증조는 하루 9개조 27명으로 운영됐다.
한편 인권위는 "경찰이 방패를 방어용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공격용 무기로 사용했다"는 진정인 주장에 대해 경찰이 "방패사용에 대한 교양을 철저히 했던 점은 인정되지만…고무바킹이 마모된 방패날에 의해 주민들이 부상당하는 등 경찰장구에 대한 사후 관리감독을 불철저해 인권침해 방지의무를 소흘히 했다"고 지적했다. 또 "병, 돌 등으로 주민을 폭행한 사실이 없다"는 경찰의 주장에 대해 부상자 대부분이 "방패, 돌, 병 조각 등에 의하여 부상을 당하였다는 사실이 병원기록 등을 통해서 확인"됐다며 "경찰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경찰이) 아무리 철저한 교양을 하였다 하더라도 경찰 모두가 모든 규정, 규칙 등을 지킨다고 예상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사후에 이런 규칙을 위반한 사람을 적발하여 처벌하는 등의 지휘체계를 확립하였어야" 한다며 "경찰의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체증도 하지 아니함으로써 인권침해를 방지할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야간집회 원천금지·강제불심검문은 헌법 위반"
2003년 11월 19일 이후 77개 중대 8000여 명으로 증강된 경찰병력이 부안읍내에 집중 배치되어 '야간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일몰 이후 3명 이상이 모이면 강제 해산한 것에 대해 인권위는 집시법이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이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무조건 불허할 것이 아니라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라며 '야간 옥외집회 원천봉쇄'는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또 인권위는 부안읍내의 주요도로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의 요건과 절차를 어긴 불심검문이 강행됐다며 이는 과도한 주민생활 통제를 목적으로 헌법 제12조 적법절차의 원리와 헌법 제14조에 보장된 이동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부안사태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 대해 "무조건 경찰력을 동원하여 주민들의 시위를 막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었고, 대화를 통하여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무리하게 경찰력에 의하여 해결하려고 한 것은 비례의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음주진압 △임산부 폭행 △여성시위자에 대한 욕설 등에 대해서는 진정인 주장 말고는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또 내소사 경찰투입은 부안군수의 억류시간과 경찰의 협상노력 등을 고려해볼 때 정당한 공권력 행사로 판단했다. 한편 2003년 8월 15일 반핵 현수막 강제철거에 대해서는 부안군에서 실시한 것이므로 경찰과는 직접 관련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권고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진정시점에 비해 결정시점이 너무 늦다"며 "진정에 따라 수동적으로 조사할게 아니라 직권조사 등의 방법을 통해 시급하게 대처했다면 그 후에 일어났던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인권위의 '굼뜬 대응'을 질타했다.
원불교인권위 김치성 활동가는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폭력시위를 유발한 것은 부안군수의 독단적인 핵폐기장 유치결정과 정부의 배후조정, 주민 반발을 억누르기 위한 경찰투입이었다"며 "폭력시위 참여여부와는 별도로 피해 배상도 폭넓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3년 12월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는데 증거부족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며 "이번 권고에서 드러난 증거로 다시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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