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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즐거운 물구나무] 지문 찍고 앉는 자리, 카드 찍고 앉는 자리

휴학을 한 후,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학교 도서관을 찾아간 어느 날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인터넷에서 뉴스로만 보았던 '지문인식형 좌석 배정기'가 우리 학교에도 버젓이 들어선 것이었다. 도서관 열람실의 '자리 맡기'를 근절하겠다는 학교의 의지는 '최초 사용자는 지문을 등록하라'는 설명문구가 붙은 기계 몇 대로 학생들에게 다가왔다.

'1인 다점'을 막기 위해 학생증을 스캔하고 엄지손가락부터 세 손가락의 지문을 등록한 후에야 학기 중에는 6시간, 시험기간에는 4시간의 공부할 권리가 주어지는 도서관. 대다수의 학생들은 별 반응 없이 새 기계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열람실 좌석배정' 시스템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이런 현실 앞에 일부 학생들의 반대 목소리는 학교 홈페이지 어딘가의 작은 움직임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벚꽃이 한창이었던 4월말은 대다수 대학의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시험기간이라 주말에 도서관을 찾은 나는 다시금 놀라고 말았다. 마치 주말 유명 영화관의 매표소처럼 기계 앞에 꼬불꼬불 ' '자로 늘어선 엄청난 줄, 그리고 도서관이라 믿기잖게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 이 수많은 학생들은 바로 열람실 좌석의 이용시간 연장을 위해 줄을 선 학생들이었다. 기계 위의 모니터는 끊임없이 지금 도서관 좌석이 '전석 매진'(?)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취업을 위한 징검다리의 역할이 강조되는 대학, 취업을 위해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기계 앞에 줄 서 책상 하나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일부 학생들은 공부할 자리가 없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하긴 시험 때만 개방하는 지하 열람실까지 모두 그 좌석배정 시스템에 포함시켜 버렸는데 전좌석 매진이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지문인식형 열람실 좌석배정 시스템의 무엇이 문제일까? 학생들이 때로 휴일의 놀이동산을 방불케 하는 줄서기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문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많은 관공서나 학교 등의 기관들이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한술 더 떠 생체정보마저 스스럼없이 손댄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고 학생이 도서관의 한 자리에 앉아 공부하기 위해 지문날인마저 해야 하는 것은 진정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다.

'1인1좌석제'와 지문날인 등록, 학생증 스캔은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문인식형 좌석배정 시스템에 대해 별반 반대가 없는 것은 '카드를 찍고 무엇을 하는 행위'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개인정보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진 것을 잘 보여준다. 대다수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학생증은 그 학교 주거래 은행의 현금카드로도 이용된다. 즉, 학생증에는 주민등록번호 등 기본 정보(?)와 더불어 은행거래가 가능한 여러 정보가 들어 있다. 열람실을 이용하려는 학생들의 세 손가락 지문을 수집하는 저 좌석배정시스템의 스캐너가 과연 학생증에서 어떤 정보를 가져가는지에 대해 학생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또한 이 기계를 들이는 것에 대해 학교 당국은 학생들에게 어떠한 동의조차 구하지 않았다. 사립대 대부분이 정부의 현실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학교 운영의 상당 부분을 등록금에 의지하는 것이 현실인 대학에서 학생들의 명확한 동의도 없이 도입된 열람실 좌석 배정 시스템은 내가 낸 등록금으로 나를 속박하는 오랏줄이 되어 레이저 스캐너를 번뜩이고 있다.

좌석의 사유화 방지를 막기 위해,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도입되었다는 열람실 좌석배정 시스템. 그러나 좌석표 미반납으로 인해 사람이 없는데도 사용 중으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학교는 이제 '좌석표 미반납자를 처벌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막대한 개인정보가 지불되는 이 방법으로도 처음 의도였던 '자리맡기'는 결국 근절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