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안 맞고 밥먹게 해달라는 게 잘못이냐!"
23일 총파업 67일째를 맞은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한 조합원이 경찰에 끌려가면서 울부짖었다. △화장실·식당·샤워실 설치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준수 △단체협약 체결 및 노동조합 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해왔던 울산건설플랜트노조는 정부가 사태해결에 직접 나설 것을 촉구하며 이날 '삼보일배'로 서울상경투쟁을 시작했으나, 경찰은 이들을 가로막고 전원연행했다.
울산사태 해결에 정부가 직접 나서야
5월 23일 오후 1시부터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사전집회에서 사회를 맡은 건설산업연맹 유기수 사무처장은 "건설현장에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해 투쟁을 시작했는데 투쟁과정에서도 우리의 인권을 강탈당했다"며 "건설노동자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지 않는 노무현 정권을 규탄"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광화문 SK본사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은 울산 파업 장기화에 대해 SK뿐만 아니라 검찰과 경찰이 책임져야 하며 "울산 건설플랜트 노동자의 파업과 고공농성에 대한 해결은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과 반부패 투명의지의 바로미터"라고 선언했다.
"20년 전의 요구, 20년 전의 대응"
사전집회에 참석한 서울대병원노조 김애란 부위원장은 "기가 막히는 현실"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지금 울산건설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 식당, 화장실 지어달라는 것은 89년 한진중공업에서 박창수 열사가 돌아가실 때 하던 요구이다. 당시 정규직들이 하던 요구를 20년이 지나 비정규직들이 똑같이 들고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통탄스럽다"는 것.
1시 50분경 민주노총 신승철 부위원장, 덤프연대 김금철 위원장 등 각 단체 대표들이 삼보일배를 시작하며 거리로 나섰다. 신고된 집회에 불허통보가 내려지고 노조조끼만 입으면 연행되는 울산을 떠나온 600여명의 조합원들은 한결같이 숙연한 표정으로 뒤따라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대열이 방송통신대 앞에 이르자 경찰은 집회가 불법이라며 막아섰고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에 항의하며 평화집회를 보장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2시 25분경 경찰은 대열 중간을 가로막고 앞장선 지도부를 연행했고 이어 노동자들을 차례차례 연행하기 시작했다.
또 "평화롭게 사태를 해결하자"고 요구하며 방송차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던 유 사무처장을 경찰 5∼6명이 달라붙어 끌어내려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연행에 순순히 응해 큰 마찰은 없었으나 몇몇 조합원들은 끝까지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날 경찰은 조합원 700여명 전원을 연행해 서울시내 28개 경찰서에 분산 수용했다.
연행과정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지금이 5공이냐, 6공이냐"며 경찰에게 울먹이며 따져묻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모두 연행된 후에도 집회에 참석했던 40여명의 비조합원들은 "연행동지 석방하라"며 연좌농성을 진행하다 해산했다.
경찰, 집회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다
신고된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참가자들을 연행한 이유에 대해 경찰은 "덤프연대를 주최로 신고된 집회"임을 들었다. 하지만 인권운동사랑방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지난 5월 17일 이후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집회신고를 사실상 금지한 상황에서 덤프연대와 함께 한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집회의 자유를 원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집회 신고시 집회 신고자를 명시하는 것은 행정적 편의를 위한 것이지, 집회 참가자를 사전에 예상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
비정규공대위, 경찰청 항의방문
한편 이날 저녁 6시 20분경 '비정규노동법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쟁취를 위한 공대위'는 경찰청 앞에서 △연행노동자 즉각석방 △경찰 책임자 처벌 △정부당국의 책임있는 사태해결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건설산업연맹 최명선 선전부장은 "현재 연행된 대부분의 노동자들을 면회한 상태이나 경찰의 사법처리방침이 분명하지 않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연행노동자들이 석방되는 대로 더욱 힘찬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