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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타리의 인권이야기] 추방된 사람들

토니 갓리프의 영화, <추방된 사람들>에는 알제리계 프랑스 이민 2세대의 이주민들이 알제리로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음악과 '씻김굿'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랍이름을 가졌지만 아랍어를 하지 못하는 나이마라는 여성은, 여행과정에서 프랑스로 떠나는 알제리 여성의 편지를 그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그 가족들이 그리움에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딜 가나 이방인이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라고 되뇐다. 그들은 알제리에서는 프랑스인, 프랑스에서는 알제인으로 보여지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알제리에서 찾은 "뿌리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한다.

<추방된 사람들>의 스틸사진. [출처] www.exils.co.kr

▲ <추방된 사람들>의 스틸사진. [출처] www.exils.co.kr



혜진을 만나다

혜진이 며칠 후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환송회도 할 겸,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다. 한달 여 동안 체류하면서 퀴어문화축제 자원활동가로 일하느라 서울 구경을 못했다는 얘기에 경복궁과 국립박물관을 찾았다. 조선(왕조중심이긴 하지만)의 건축과 문화에 대해서 흥미로워했고 매우 '컬러풀'하다는 소감을 말해주었다. 경복궁 안에서 성별과 성적지향, 국적에 관련된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나에게도 굉장히 특별했다.

혜진은 생후 14개월에 한국에서 벨기에로 입양되었고 청소년기에 트렌스젠더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을 하면서 양부모에게 배척되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살고있는 여성이다. 현재 이십대 초반으로 암스테르담에서 'IHLIA'(International Homo/Lesbian Informationcenter and Archives)라는 성소수자 정보자료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언젠가 한국에 방문하고 싶고 한국의 퀴어커뮤니티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체류하게 되었다.

혜진.

▲ 혜진.



혜진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퀴어문화축제 기간에 레즈비언 파티가 열렸던 클럽이었는데, 유창한 영어와 능숙한 춤사위가 첫인상이었다. 그 인상은 '외국인'과 '퀴어'에 대한 것이었다. 퀴어문화축제 자원 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통해서 소개를 받고 그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친근한 눈빛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혜진은 웹사이트를 통해서 한국의 퀴어커뮤니티를 접했을 때 항상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약자)가 언급되는 것을 보고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대한 기대도 많이 가졌는데 클럽이나 모임에서 트랜스젠더를 한번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다고 했다. 퀴어들의 권리(동성결혼, 양육권, 트랜스젠더의 의학적 지원)등이 법적으로 보장된 암스테르담에서도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주변화되어 있었다고 말했고, 이제 독자적인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고 하니 혜진 나름대로 이해는 되었겠지만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을 충분히, 동등하게 '레즈비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느낀다고 했다.


충분히,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것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 기준, 이해할만한 경계가 나누어져있고, 그것에 따라서 인권이 재단되는 사회에서 소수자는 항상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일상을 겪으면서 그 범주와 권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혜진은 계속해서 한글 이름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한국어를 알지 못한다. 암스테르담에서는 계속 아시아인으로 구별되었지만 문화적인 배경은 전혀 아시아와 관련이 없다. 'MtoF 트랜스젠더'(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전환)이지만 남성을 사랑하지 않는 레즈비언이다. 이번에 한국에 체류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친구를 만들었고 몇 년 후에 여기에서 레즈비언 활동가로서의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 국적을 가지고 살아갈 생각은 없다. 가족에 관련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가능하다면 동성파트너와 아이를 기르면서 서로를 지지하는 '가족'을 구성해서 살아가고 싶다. 이런 내용의 고민, 정체성, 바램이 충분히, 동등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어딜 가나 이방인이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기를.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퀴어커뮤니티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나름의 '가족'을 꾸리고 싶은 마음은 '추방된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것은 단지 기존의 범주, 기준, 경계를 통해서 자신의 기원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암스테르담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퀴어활동가로 살아왔던 것처럼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며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납득하는, 그럼으로써 자신의 '다양성'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어제 저녁 환송회에 모인 친구들은 케잌에 초를 켜고 서로를 기억하고 싶다는, 다시 한국에 오면 좀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다는 바램들을 나누었다. 말로 이해한다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충분히,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경험하게 해준 혜진에게 감사한다. 인터뷰 통역과 녹취를 도와주고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도.
덧붙임

타리 님은 '다름으로 닮은 여성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