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기에 있는 장애 영유아
"처음에 들어간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잘해주셔서 아이가 한글로 이름을 쓰는 등 눈에 띄게 좋아졌었어요. 이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거든요. 한 학기만 제대로 배워도 그렇게 아이가 많이 좋아졌었는데 한학기 후에 그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유치원을 떠나셔서 그것도 그때뿐이었어요." (ㄷ초등학교 학부모)
장애 영유아는 두 가지 특징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비장애인과 다른 심신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발달기에 있다는 것이다. 발달기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무한히 열려있는 시기이다. 만일 적절하고 질 높은 서비스가 장애 영유아에게 제공되면 치료 및 교육적 효과가 크다. 반대로 열려있는 기회가 닫히게 되면 장애 영유아의 의존성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다양한 교육적 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모에게 전가된 영유아 장애의 발견
현재 영유아시기의 장애문제는 대부분 부모와 개별 병원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영유아시기의 장애와 교육의 문제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오직 부모의 손에 모든 것이 맡겨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경우 영유아시기에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장애의 위험이 높은 아동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가 전혀 없다. 영유아시기의 장애를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많은 보건소나 산부인과 등의 병원에서 개별영유아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 자체가 근본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ㄷ초등학교 학부모는 "아이가 6살 때쯤 같은 증세의 아이를 가진 다른 부모와 함께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그때 '염색체 이상 증후군' 장애를 가진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설사 장애가 의심된다 하더라도 보건소나 병원 등은 이런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하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또 전달하고 싶어도 공적인 대상기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와 장애위험 영유아의 조기발견 가능성은 매우 낮다. ㅍ초등학교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만5세가 되기 전에 정신지체 2급으로 장애인등록을 했기 때문에 부처간 협조체제가 유기적으로 작동했다면, 복지서비스 및 취학지도, 특수교육서비스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며 "행정기관은 이런 지원을 전혀 하지 않아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학부모가 스스로 관청과, 교육청 그리고 학교를 찾아다니고, 주변사람들에게 문의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약한 특수교육과 치료지원
장애 영유아 시기는 치료 혹은 치료교육에 대한 요구와 필요성이 그 어느 시기 보다 강하다. 특히 언어치료에 대한 부모의 욕구는 매우 크다. ㄷ초등학교 학부모는 "아이가 6살이었을 때 '염색체 이상 증후군'은 희귀병이라 장애인 등록이 되지 않아 재활치료 등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언어치료 같은 경우 혜택 없이 받으면 30분에 만원인데 일주일에 4∼5시간 정도 언어치료를 받으려면 한 달에 40만원 정도가 필요해 언어치료를 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재활병원은 장애인증이 있으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병원 수가 너무 적어 등록을 하고도 적게는 1년, 많게는 2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언어치료 등은 나라에서 보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장애를 가지지 않은 아이들과도 의사소통에서 오는 불화가 가장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열악한 공교육 환경은 결국 부모들로 하여금 사설조기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경제적 능력이 있는 가정에서나 가능하다. ㅍ초등학교 학부모는 "아들 영·유아 때 가르치느라고 한때는 월급의 최고 40%가량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공교육이 부실해 고액 과외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구교현 장애인교육권연대 조직국장은 "서울을 예로 들면 2004년 기준으로 유치원 특수교육기관 설치율이 2%로 매우 낮고 특수교육기관이 없는 구가 7개나 된다"며 "많은 부모님들이 사교육에 의존하거나 교육을 포기하므로 특수교육기관을 증설하고 각 학급에 교사를 배치하며 교재·교구를 지원하는 등 공교육 체계 환경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언어교육 관련 사립학원 강사의 2시간 짜리 강연을 들으러 전국 각지에서 부모들이 올라옵니다. 공교육의 부실함에 부모들은 고액의 과외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교육인적자원부는 실태조사를 비롯해 충분한 수요를 파악해서 정확한 자료를 만들어 부모의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한 발달지체장애 영유아의 어머니)
부족한 설치율에 따라 '특수교육수혜율'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2005년도 특수교육실태조사서'에 따르면 3∼5세 장애 유아들의 '특수교육수혜율'은 29.8%이다. 하지만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지난 7월 19일 토론회에서 제시한 2004년 기준 '특수교육요구아동 추정수에 근거한 특수교육대상자 수혜율'(통계청 인구추계, 교육통계연보, 특수교육연차보고서 등 종합 정리)에 따르면 3∼5세 특수교육수혜율은 3.9%로 교육부 주장보다 25.9%나 낮다. 도경만 장애인교육권연대 집행위원장은 "교육부는 영유아 시기의 특성상 뚜렷한 장애진단을 받지 않은 이른바 '장애고위험영아'가 보다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며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한 29.8%는 문제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수혜율 높이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통계를 곧이곧대로 믿더라도 장애 영유아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장애 영유아는 입학거부를 당하기 일쑤이고 더욱이 집 근처에 있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은 거의 행운에 가깝다. ㄷ초등학교 학부모는 "아이가 7살이 되던 때 지난 1년 동안 다니던 유치원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해서 다른 여러 유치원에 문의했는데 장애 아동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며 "할 수 없이 아는 사람의 동생이 운영하는 곳에 부탁해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 영유아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닌다고 해서 교육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장애 영유아가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는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이 특수교육적인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이기 때문. ㄷ 초등학교 학부모는 "이전 유치원에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을 권해 주위사람을 통해 알아봤더니, 여느 유치원과는 달리 차편이 없어 부모가 데리고 다녀야하지만 소문에 특수교육 선생님이 오신다고 해서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보내려 했다"며 "그런데 그곳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특수교육 선생님은 없었다"고 말했다.
구체성·강제력 없는 특수교육진흥법
특수교육진흥법에는 유치원 과정의 무상교육과 조기특수교육 시책 강구라는 장애 영유아와 직접 관련된 두 개의 조항이 있다. 특수교육진흥법은 "유치원 및 고등학교 과정의 교육은 이를 무상으로 한다"(제5조 1항),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를 지닌 유아에 대한 유치원 과정의 교육을 촉진하기 위하여 장애의 조기발견, 교원양성, 교육시설 설비의 확충 등 조기특수교육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제8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특수교육진흥법 시행령에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무상교육에 필요한 입학금, 수업료 및 교과용 도서대를 부담 또는 보조한다"(제5조)는 규정 말고는 다른 내용규정이 전혀 없어 "유치원 과정의 교육을 무상"으로 하고 "조기특수교육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두 법률 조항만을 가지고 장애 영유아의 다양하고 특수한 교육적 요구가 충족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법률이 구체성과 강제력에 있어 결정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이에 따라 특수교육진흥법 제5조 2항에 규정된 대로 대통령령에 의해 장애 영유아의 무상교육을 위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함은 물론 조기특수교육의 시책을 시행령에서 보다 상세하게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