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5일 두산중공업이 맡고 있는 부천의 주상복합아파트 위브더스테이트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건설일용노동자 유용만 씨의 사인이 애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지병이 아니라 안전조치 미흡으로 인한 산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사측이 사고사 입증에 도움이 될만한 증거물을 치우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두산 중공업 산재사망사고 진상조사단'(단장 건설연맹 남궁현 위원장, 아래 진상조사단)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결과) 고온 다습 부담 작업의 노동 조건에서, 현장의 안전조치 미흡으로 인해 낙하물에 머리를 맞고, 심근경색이 유발되어 급사한 산재사고"라고 밝혔다.
"낙하물에 맞아 심근경색 유발됐다"
사측과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사고 당일 엘리베이터 거푸집을 해체하던 유 씨는 퇴근시간 직전인 오후 5시 55분경 작업을 마치고 안전장구를 벗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6시 경 유 씨는 지하4층에서 지상으로 통하는 통로인 개구부 계단 옆에서 쓰러진 채 두산중공업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이어 두산중공업 박 아무개 차장과 류 아무개 안전과장, 하청회사인 태중건설의 금 아무개 이사, 김 아무개 소장이 사고현장에 도착해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유 씨는 6시 35분경 응급구조대에 의해 부천 성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7시 45분경 사망했다. 이어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나는 것을 확인하고 병원에서는 사인미상으로 사체검안서를 발부했으며 7일 오전 8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아래 국과수)에서 부검이 진행됐다.
국과수는 유 씨의 죽음을 "법의학적 측면에서는 내인성 급사의 범주에 해당"한다며 직접 사인이 심근경색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내인성 급사는) 안정 시보다는 어떠한 자극이 가하여 졌을 때 비교적 잘 일어"난다며 △중노동 등 육체적 자극 △공포 등 정신적 자극 △온도·습도의 변화 등 기후의 격변 등과 함께 구타와 같은 외력을 예로 들었다.
이에 대해 진상조사단은 "(유 씨가) 고혈압으로 일정기간 약물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사고발생 직전인 2005년 6월 타 현장에서의 건강검진결과를 보면 혈압은 정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당일 고온 다습한 지하 4층에서 작업하던 유 씨가 낙하물에 맞아 심근경색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했다. 진상조사단은 사고 당시 △개구부 주위에 낙하물 방지를 위한 발끝막이판(폭목)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개구부 주위에 각종 자재와 작업도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작업공간에만 임시 조명을 설치해 작업하고 나머지 공간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퇴근 시간 무렵이어서 작업자들의 왕래가 많았던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사측의 산재 은폐 의혹
이와 함께 사측이 산재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유 씨의 동료 이 아무개 씨는 당일 일을 시작할 때 유 씨가 안전모에 자기 이름을 적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지만 사측은 유 씨가 사용했던 안전모를 찾지 못하고 수차례 안전모를 바꿔 제출했다. 진상조사단은 "사고사 관련 증거가 될 수 있는 안전모를 두산 측에서 고의적으로 은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측은 이 아무개 씨가 병원으로 가보는 것은 물론 사망원인을 알 때까지는 가족들에게 연락하지 말라며 당일 저녁 8시 30분까지 제지해 의혹을 더했다.
한편 사측은 사건 발생 당시 주변 상황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었으나 사건 다음날인 6일 새벽부터 이뤄진 경찰 현장조사나 8일 노동부 조사 때도 공개하지 않다가 국과수 부검결과가 심근경색으로 나온 22일에야 경찰과 노동부에 제출했다. 진상조사단은 "사고사로 결과가 나오면 혈흔이 있는 사고 당시 사진을 끝까지 제출하지 않고자 하는 고의성이 역력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사측이 공개한 사진과 6일 경찰조사 당시 사진을 비교하면 △현장에서 철근이 사라졌으며 △현장 심폐소생술 당시 유 씨의 뒷목을 받쳤던 피묻은 박스가 사라졌고 △머리 부위 혈흔이 있던 자리의 혈흔도 사라졌다. 진상조사단은 "(사측이) 사고이후 현장에서 사고사라는 것이 입증될 만한 여러 증거물 등을 고의적으로 은닉하고, 사고 원인으로 보여지는 낙하물도 은닉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측이 사고발생 후 2시간 30분이 지난 8시 29분경에야 경찰에 신고했고, 이때도 사망이 확실치 않다고 신고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진상조사단은 사측의 지연신고가 "지구대에서 사망확인을 위해 병원으로 출동하고, 사고발생 6시간이 지난 12시 가까이에 중부경찰서로 이첩되게 되는 요인으로 작동"했다며 "사업주 법 위반 사실을 조작하고, 사고사가 아닌 심근경색으로 지속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관련 근거 마련을 위한 시간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응급구조대와 함께 병원에 갔던 태중건설 김 아무개 소장은 8시 30분 전후로 현장에 사망사실을 알렸다고 진술했으나 현장에서는 10시 이후에 사망사실을 알았다고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는 것.
진상조사단은 즉각적인 산재승인과 함께 산재은폐 정황에 대한 재수사, 사고사를 지병으로 몰고 간 관련자 전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주문했다. 진상조사단의 주장에 대해 부천지방노동사무소 임관택 산업안전감독관은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다각도로 조사 중"이라며 "검사 지휘에 따라 법의학자에게 자문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주의 산재은폐 막을 방법은?
현행 산업안전감독관집무규정 제28조는 '교통사고, 고혈압 등 개인지병, 방화 등에 의한 재해'는 사업주의 직접적인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 위반에 기인하지 않았을 경우 현장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도 노동부는 사인이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사건발생 4일째인 8일에야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진상조사단은 이 규정으로 인해 "산재 발생시…사업주의 과실로 인한 민사배상 부담 최소화, 재해율 가중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업주의 산재 보고 지연, 산재발생 원인 위조…서류 조작이 횡행하고 있"지만 방치된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부가 지방 노동관서별로 재해율을 관리하고 있어 노동관서가 재해율을 낮추기 위해 산재를 은폐하기도 한다는 것.
사고 발생시 노동부 보고시한을 사망사고는 24시간, 일반재해는 한달로 하고 있는 산안법 시행규칙 제4조도 문제로 지목됐다. 진상조사단은 "사업주의 과실 여부에 대한 조작을 구조적으로 방치하는 것"이라며 사망사고의 경우 지체없이 보고하고 경찰에도 신고하도록 하며 일반재해의 경우에도 보고시한을 단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산재 발생을 노동부에 신고하지 않거나 허위보고를 한 경우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산안법 규정도 산재은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최명선 건설연맹 산안부장은 "보통 산재발생 보고를 할 때 사업주는 사고의 원인이 된 산업안전보건 조치 불이행은 빼놓고 사고경위를 간단히 보고할 뿐이어서 유명무실한 규정"이라며 "사업주의 은폐시도를 막을 수 있는 엄격한 처벌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26일 발족한 진상조사단에는 건설연맹, 경기중부 건설노조, 산재사망 대책마련 캠페인단, 단병호 의원(민주노동당)실 등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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