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달리 온 나라가 시끌벅적합니다. 대학 입학 실력을 재기 위한 수학능력시험이 오늘 치러지기 때문이지요. 부릉부릉~ 시험시간에 늦은 언니, 오빠를 실은 오토바이가 쌩쌩 달리는가 하면, 영차영차 시험보는 언니, 오빠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우렁찹니다. 올해 시험이 지난해 시험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따져보는 뉴스들도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아마 시험 보는 언니, 오빠에게 어떤 선물을 주면 좋을까 고민한 어린이들도 많을 거예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수능시험에만 가 있는 사이, 한 고3 학생의 죽음은 쓸쓸히 잊혀지고 있습니다. 은석이는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공업고등학교 학생입니다. 은석이의 진짜 이름은 뭔지 모릅니다. 가족들이 이름이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 은석이는 현장실습을 나간 회사에서 일을 하다 커다란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팔딱팔딱 힘차게 뛰던 은석이의 심장 박동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어요. 주위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들어주던 은석이의 웃음도 영영 볼 수 없게 되었지요.


아찔아찔 위험한 일터

우리나라 고등학교 중에는 공업, 상업, 농업을 가르치는 실업계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실업계 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은 3학년이 되면 공장이나 사무실로 현장실습을 나갑니다. 학교를 떠나 일터에서 직접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익힐 기회를 갖도록 하는 거지요. 그런데 실습생을 데려가는 회사들의 속셈은 다른가 봐요. 아주 아주 적은 돈만 쥐어주면서 맘대로 오랫동안 일을 시키거나 위험한 일을 맡기는 일이 흔히 일어나거든요. 은석이가 일했던 곳도 그런 곳이었대요.

은석이가 현장실습을 나간 곳은 엘리베이터를 새로 달거나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고쳐주는 회사였습니다. 은석이는 아침 6시반에 집을 나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밤 11시,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떨 때는 새벽에 일을 끝내고 돌아와 코피를 왕창 쏟아낸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꼬박 두 달 동안, 은석이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정말 힘들게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안타까운 운명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며칠 전 16일이었어요. 은석이는 21미터 높이에 멈춰진 엘리베이터 천장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발이 미끄러져 엘리베이터 박스 옆에 나있던 틈새로 떨어졌어요. 정말 순식간에, 은석이의 몸은 지하 1층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져 버렸답니다. 그렇게 은석이가 죽은 다음,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어요. 21미터나 되는 높은 곳에 올라가 일을 하라고 시켰던 회사가 몸을 튼튼히 묶을 수 있는 안전띠 하나 주지 않았던 거예요.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회사가 지켜야 할 의무를 지켰더라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던 겁니다.


나쁜 회사들을 혼내주려면…

현장실습을 나간 많은 언니, 오빠들이 은석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하루 종일 12시간 넘게 계속 서서 일하는 실습생, 허겁지겁 밥을 입속에 털어넣고 다시 일하러 뛰어가야 하는 실습생,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안전띠에 매달려 일하는 실습생, 마스크도 없이 독한 화학약품 냄새를 맡으며 일하는 실습생, 일이 끝났으니 퇴근하겠다고 얘기했다가 곧장 쫓겨난 실습생, 심한 욕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하는 실습생…. 배움터 구실을 해야 할 회사에서 가르쳐주는 것 하나 없이 실습생을 부려먹기만 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내보내놓고선 나 몰라라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실습생들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썩은 동아줄'에 매달려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그래서 실습생의 인권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지금대로라면 현장실습이 당장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즐거운 배움터, 행복한 일터가 될 수 없는 회사들이 나쁜 속셈을 갖고 실습생을 데려가 부려먹는 일이 넘쳐나고 있다면, 실습생을 더 이상 내보내선 안된다는 거지요. 만약에 현장실습을 당장 없애기 힘들다면, 실습생들에게 힘이 될 만한 '튼튼한 동아줄'을 주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실습생들이 나쁜 회사를 혼내줄 수 있는 방법을 법에 마련해두고, 학교에서도 실습생들의 처지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