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울산 동구 청소년 문화의 집이란 곳에서 '평화바램 영화제'를 열었고 마지막날 평화에 관해서 청소년들과 같이 얘기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평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참여하신 분들이 대부분 고1 여학생들이어서 자연히 학교와 여성에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쓰레기통 비우는 일을 맡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와서 무조건 때리는 거예요. 저는 쓰레기통이 다 차면 비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매일 매일 비우라고 방송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 그 방송을 못 들었거든요." 여러분의 학교는 평화로우냐는 질문에 대한 한 학생의 대답이었습니다.
교육을 앞세운 인권침해와 폭력이 너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학생 인권의 현실입니다. 인권과 평화가 무엇인지 배우고 체험해야할 학생들이 오히려 비인간적인 대우를 억지로 견디며 결코 평화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 학생들이 얘기한 또 하나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외모입니다. 취직을 할 때 회사에서 외모를 먼저 보고 실력을 나중에 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직업 선택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입니다. 여자가 할 일과 남자가 할 일을 나눠 놓고 여성들에게는 '여자다운' 일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들의 삶을 평화롭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들입니다. 만약 남성들이 취직을 할 때 다리 모양이 어떤지, 몸무게가 어떤지, 얼굴 생김새가 어떤지가 채용 여부의 주요 기준이 된다면 언론에서부터 커다란 '사회문제'로 취급했을 겁니다. 오죽 했으면 한 학생은 "여자들도 군대 가야 돼요"라고 했을까요. 일상에서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평화로운 세상일지 모르지만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계속 차별 받고, 그 이유가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결코 평화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평화는 전쟁과 같은 커다란 일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우리 곁의 일입니다. 평화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평화는 이것이야'라고 정의 내리기보다는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지고 생각해 봐요. 과연 나는 어떤 때 평화가 깨진다고 느끼는지… 노동자·여성·학생·장애인 등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그 이유는 다를 겁니다. 그러면서 모두에게 똑같은 것도 있습니다. 자신이 한 인간으로써 존중받고 이해 받고 싶다는 거겠죠.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일상 속의 평화입니다.
◎미니 님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입니다.
- 2730호
- 미니
- 2005-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