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1일 개통된 KTX에는 차량마다 기관사, 열차팀장과 함께 △승객안내 △차내방송 △식음료 제공 △시설 관리 등을 맡는 여성승무원 3명이 탑승한다. 이들 KTX 여성승무원들은 다른 승무원과는 달리 한국철도공사에 직접 소속된 것이 아니라 역 구내매점 등에서 식료품을 판매하는 (주)한국철도유통(옛 홍익회)에 속해 있다.
한국철도공사와 도급계약을 맺은 (주)한국철도유통은 23일 전체 승무원에 대해 '재계약 여부를 우편으로 통보했다'는 공고를 붙여 '선별재계약을 통한 해고'를 예고했다. 또 지난 1주일동안 지부간부 8명에 대해 3차례의 감사출두 조치를, 조합 활동에 열성적인 조합원 5명에 대해 승무정지 조치를 취해 재계약 시점인 연말을 앞두고 노조 활동가들을 해고하기 위해 근거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KTX 승무지부(아래 승무지부)는 24일 오전 10시30분 서울열차승무사무소 앞마당에서 조합원 12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비상총회를 개최하고 "승무원 전체는 단 한 명의 해고도 없이 전원 재계약되어야 한다"며 "철도공사는 위장도급을 중단하고…(여성승무원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세원 승무지부장은 대회사를 통해 "탑승해서 일할 때만큼은 KTX 승무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발에 땀나게 일했는데 결과가 선별재계약으로 돌아왔다"며 "재계약이라는 썩은 당근에 두 손 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총회에 참석한 조합원 성 아무개 씨는 "오늘 아침 사측으로부터 등기우편물을 받았는데 '2006년 재계약이 되겠으나 유인물 배포, 집회 참가 등 노조활동을 하면 불이익이 갈 수 있다'고 써 있었다"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KTX 개통직전인 지난해 3월 채용된 이들은 지난해 말 첫 계약갱신 시기를 맞았지만 전원 재계약되었을 정도로 계약서를 쓰는 것 자체가 요식행위였다. 하지만 올해 2월 승무지부가 출범해 열악한 노동조건을 문제삼자 사측은 12월로 돌아온 다음해 재계약을 빌미로 조합원들을 회유하고 있는 것.
(주)한국철도유통은 지난해말 한국철도산업노조 철도유통본부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조합원의 재계약은 정당한 사유없이 재계약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였고, 그 정당한 사유의 유무는 노동조합과 협의하여 결정"하도록 해 사측의 선별해고 시도는 단협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정지선 승무지부 부지부장은 "항공사 스튜어디스와는 달리 고용이 안정되고 정년이 보장되는 '땅 위의 스튜어디스'라는 말만 믿고 입사했는데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한국철도유통이 철도공사와 여성승무원 사이에서 중간착취를 일삼아 입사 시 약속했던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것은 물론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체불되기도 한다. 철도공사가 도급계약에서 책정한 승무원 임금은 월 248만5천원이지만 (주)한국철도유통은 여성승무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의 최고액을 월 174만1천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마저도 연월차 휴가와 상여금 등 모든 수당을 합해야만 가능한 액수로 보통 월수령액은 120만원 안팎이다. 정 부지부장은 "입사 후 교육할 때 임금이 월평균 174만원이라고 들었지만 이것은 평균액수가 아니라 최고액수였다"며 "연월차·생리휴가·병가를 쓰지 않고 상여금까지 받아야 가능한 액수"라고 말했다.
노동강도도 문제로 제기됐다. 성 씨는 "주말 승객은 1000명이 넘는데 여성승무원은 고작 3명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13개 일반실을 맡는 승무원 2명 가운데 1명이 특실 업무를 보조하게 되어 있어 나머지 1명이 일반실 승객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며 인원확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생리휴가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희망자들이 모여 '제비뽑기'로 생리휴가일을 결정해야 했고 최근에는 제비뽑기 방식이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같은날 먼저 신청한 사람이 있을 경우 생리휴가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똑같다.
이날 비상총회를 마친 조합원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역으로 행진한 후 KTX 탑승구 근처에서 저녁9시까지 농성을 벌였다. 지난 2월 결성돼 여성승무원 400여명 전원이 가입한 승무지부는 한국노총 산하 한국철도산업노조 철도유통본부에 속했지만 최근 소속 노조를 바꾸기로 결의했다. 민 지부장은 "(여성승무원들이) 유니온샵으로 철도유통본부에 속했지만 노조는 사측의 대변만 하고 있다"며 "조만간에 조합원 전원이 노조를 탈퇴하고 민주노총 산하 전국철도노조에 가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