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네요. 둥근 공 하나를 놓고 11명이 팀을 이뤄 죽기 살기로 싸우는 축구 전쟁. 그러니까 한 경기에 22명이 뛰는 축구전쟁인데, 사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뛰는 판. “대~한민국!”이라는 구령과 애국가에 맞춰 사활을 거는 전쟁이 돌아오고 있는 셈이죠.
월드컵 블랙홀에 빠질라
이 눔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대한민국이 너무 싫고 ‘애국자 되기’는 죽기 살기로 싫은데, 방송을 트나 거리를 지나나 이 소리들을 들어야 하니 정말 죽을 맛입니다. “내 귀에 방송장치 있어요”라고 티비 뉴스에서 뛰어들어 방송사고라도 내버릴까! 그런 생각마저 드네요.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아니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중대한 사안, 제2의 개항이라고까지 하는 한미 FTA 협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이 마당에도 광장과 거리마다 붉은 색의 월드컵 인파로 넘쳐나겠지요.
6월은 항쟁의 달, 아니 다시 항쟁이 필요한 달입니다. 거리거리마다 붉은 색으로 넘쳐나는 그 인파 속에서 태극기가 아닌 ‘한미 FTA 반대!’ 피켓을 올려보면 어떨까요? 아니면 ‘평택 군부대 철수!’ 현수막을 걸든지…. 또 어떤 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노무현 퇴진!’을 외치고, ‘주한미군 철수!’도 함께 외쳐 보면 어떨까요? 4년 전 이맘 때, 미선이와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을 때처럼, 이번에도 모든 중대 사안들이 “기필코 4강! 오~ 필승 코리아”라는 쓰나미에 휩쓸려버리지 않도록 말이지요. 거 왜 자본과 국가권력은 월드컵 때만 되면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라는 주술을 걸어 사람들의 혼을 빼놓지 않습니까? “정신을 놓아라! 월드컵이 폐막되는 그날까지 오직 월드컵만 말하라! 오로지 붉은 색으로, 자본에 첫 영혼을 팔아버린 붉은 악마의 영도를 받아 발바닥에 땀나도록 ‘꼭지 점’을 추어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광장에서 거리에서 신나게 응원만 하라! 운이 좋아 다시 4강까지 갈지 모른다. 한 번 진다해도 속단은 금물, 끝까지 4강 진출에 나의 모든 소망으로 걸어라!” 그야말로 월드컵은 블랙홀인 셈이지요. 2002년에도 그랬지요. 월드컵을 팔아 자신의 이윤을 챙기려는 자본과 국가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월드컵 광기 예방주사’라도 맞아두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파란색으로 도배될 끔찍한 6월
기어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 6월이. 보나마나 지방자치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파란색으로 도배되겠지요. 거 참 파란색을 그리 좋아했던 제가 파란색이 이리 싫어질지는 몰랐습니다. 대표가 테러를 당하는 흉사가 지지율을 급등시키는 호재가 된 이 마당에 한나라당의 압승을 예상하지 못할 바보는 아마 열린우리당의 공식 멘트밖에 없겠지요. 지방자치단체장도 한나라당, 지방의회도 한나라당…. 지방 행정과 의회가 보수 야당의 손아귀에 넘어가니 모든 진보의 가치가 지역에서 바닥에 떨어지게 되겠지요.
지방자치체들은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영어마을과 국제도시를 끌어들이고, 기업을 위해서는 모든 세제 혜택도 마다 않겠지요. 그야말로 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이루어지리라는 게 어렵지 않게 그려지는군요. 선거 때 반짝했던 인사치레를 뒤로 하고 골프장이다, 룸싸롱이다 돌아다니느라 바쁜 그분들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지방자치는 다시 한 번 모욕을 당하게 생겼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급속하게 무너져 내리고 기회주의자들은 슬그머니 당적을 바꾸려 들겠지요. 그러다 보면 국회마저 한나라당이 제1당으로 올라설지 모릅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바로 인과응보 아닙니까?
이 나라의 보수정치는 참으로 희한합니다. 친미 사대주의가 보수주의의 본 색깔인 양 맹신하고, 형님 미국의 이익과 자신들의 이익을 기꺼이 일치시키는 이들은 그야말로 진정한 세계주의자 아닙니까? 그들에게는 민족도 없고, 나라도 없으니까요. 민주주의와 인권? 그들에게는 자기들이 궁지에 몰릴 때나 꺼내드는 방패일 뿐, 보통 때는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일 뿐이지요. 오로지 반공냉전주의를 신주단지처럼 받드는 시장자유주의, 자본만능주의가 더욱 기세등등해지고, 올드 라이트든 뉴 라이트든 자유주의 정신마저 왜곡하는 정치모리배들의 판이 되리니…. 자, 이제 전선은 더욱 확연해질 겁니다. 보수와 진보, 자본과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과 인권의 전선 말이지요.
기업하기 좋은 한반도?
지방자치 선거결과가 어찌 되든, 아니 여당의 참패가 확실하면 할수록 노무현은 6.15 공동선언 6주년을 계기로 김대중의 방북을 성사시키려 하겠지요. 그 다음엔 남북정상회담까지 따낼 생각인가 봅니다. 그렇게 된다고 과연 노무현이 통일의 전사로 기억될까요? 한국 자본의 북한시장 점령 탄탄대로를 놓기 위해, 한미 FTA 협상에서 모든 건 포기하더라도 개성공단 생산물에 ‘made in Korea’만을 붙여놓고 싶은 그. 멀지 않은 어느 날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하면서 이렇게 고백할지 모릅니다. “사실, 난 북한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고 싶었소”라고 말이지요.
북으로 자본의 착취를 전파하면서 6월 5일부터는 한미 FTA 1차 본 협상이 워싱턴에서 시작됩니다. 한국 정부 5개 부처 장관들이 꼴사납게 담화문을 발표하고 미국 원정 시위를 반대하고 나섰다지요. 원정시위에 나설 이들의 신상정보를 미 대사관에 ‘협조’해서 비자 발급도 막았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아예 미국정부는 원정시위 잘못하면 테러범으로 옭아 넣겠다고 벌써부터 으름장을 놓습니다.
평택투쟁 돌파구 찾아야 할 텐데…
그나저나 우리의 평택은 과연 어찌 될까요? 군대 철조망이 대추리, 도두리를 더욱 옥죄고, 경찰의 불법 감시가 더욱 기승을 부릴까요? 아님 다시 주민들과 인권․평화세력이 연대하여 군부대와 경찰을 저 멀리 몰아내고 철조망도 거둬내고 농사를 짓게 될까요? 어림도 없는 일이라구요? 아니, 해 봐야 아는 일이지요. 월드컵 쓰나미가 온 나라를 휩쓸어도, 미국과 정부 맘대로 평택에 미군기지를 확장 이전하는 건 한사코 막아야 하니까요. 사람 죽이는 전쟁 기지에 생명의 땅을 내줄 수는 없지요. 6월 투쟁에서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평택은 정말 위험해집니다. 정말 힘들어지지요. 월드컵 블랙홀을 넘을 비책을 찾아야 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영웅적 보이콧을 기대한다
쉿~ 내놓고 말했다가는 맞아 죽겠지만 어제 밤 꿈 얘기 좀 슬쩍 꺼내볼까 합니다. 한국이 토고전에서 만방으로 깨지는 겁니다. 안정환, 박지성, 박주영이 독일에서 제 컨디션 못 찾고 헤매다가 2대 빵인지 3대 빵인지, 여하튼 만방으로 깨져 버리는 거지요. 4강 진출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가 일시에 냉각되어 버렸는데, 신기하게도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겁니다. 평택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한미 FTA 협상을 위해 날아간 한국정부 대표단이 비굴하게도 백성들 목숨과도 같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다 포기하겠다고 사인하는 모습을 눈 부릅뜨고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사이, 최저임금 하한선을 몇 만원이라도 높여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붉은 옷 입은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누구 말대로 4천만이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지 않습니까! 월드컵 대표들이여, 당신들이 ‘애국’하는 일은 첫판부터 처참하게 깨지는 일, 생존의 벼랑 끝에 매달린 이 땅 백성들을 위해 첫판부터 졸전을 치르는 일밖에 없습니다. 뛰지 말고 그라운드를 산보하시라! 이운재 선수, 골문으로 향해 날아오는 공을 모두 피해 버리시게! 당신들이 잘 뛰면 자본이 웃고, 노무현과 한나라당이 웃고, 미국이 웃는다니까요. 군부대과 경찰에 짓밟히고 있는 평택 대추리, 도두리 마을주민들을 위해, 한미 FTA로 거리에 나앉고 도시 노점상으로 자리를 바꿀 농민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참담한 패배입니다. 그것도 아예 1차전부터. 야유는 한때! 그대들의 영웅적인 보이콧은 길이 역사에 기억될 것이니! 하하하
들도깨비 전법은 어떨까요?
끝내기 전에 잠깐! 비책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실랍니까? ‘들도깨비 전법’이라고 아실랑가 모르겠네요. 지난 4월 7일 경찰이 용역을 앞세워 농수로를 파괴하고 콘트리트를 들이부었죠.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파괴된 농수로가 밤새 감쪽같이 복구되어 있더라 이 말입니다. 누가 한 일이냐구요? 바로 보다 못한 ‘들도깨비들’입지요. 이 들도깨비를 군사용어로 말해 1개 사단만 불러오는 겁니다. 뭐 그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이라는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죽은자’들까지 불러내 싸우는 마지막 장면 기억하시죠?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연대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6월엔 죽은 자들, 열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계절이네요. 소곤소곤~ 이번 6월엔 열사들 모시고 들도깨비 모시고 대추리 평화동산에 올라 철조망 날려버릴 계획 한번 세워보면 어떨까요?
- 5호
- 포비의 두리번두리번
- 박래군
- 200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