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웨스트 파푸아를 43년 전 불법적으로 점령한 후 파푸아인들의 독립 투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들로 온갖 인권침해와 자원 수탈을 일삼아왔다. 웨스트 파푸아의 상황은 독립 전의 동티모르와 현재의 아체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웨스트 파푸아는 제대로 된 국제 사회의 관심을 받기 힘들었고 현재까지도 그곳은 외부와 차단된 숨막히는 감시와 공포의 지역으로 남아있다.
웨스트 파푸아의 독립에 대해 국제 사회가 상대적으로 무관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과거 그들이 웨스트 파푸아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지배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국제적 합의 때문이다. 웨스트 파푸아는 1961년 네델란드로부터 독립을 약속 받고 의회구성과 국가명, 국기까지 제정하는 등 독립 이후를 준비하던 나라였다. 주변 섬나라들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영토 야욕이 군사적 행동으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그러나 웨스트 파푸아를 놓고 불거진 네델란드와 인도네시아의 갈등을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나라, 미국의 개입은 웨스트 파푸아를 유엔임시위원회의 위임통치와 인도네시아 이양을 내용으로 하는 ‘뉴욕 협정’을 체결하게 만들었고, 결국 웨스트 파푸아인들의 정치적 목소리와 의지는 무시된 채 1969년 독립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Act of Free Choice)가 실시되었다.
그렇게 웨스트 파푸아는 유엔과 주변 열강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철저한 묵인을 통해 지금까지도 굴욕의 역사를 감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거 인도네시아의 불법적 침략뿐만 아니라 현재의 만행들을 모를 리 없는 호주가, 그것도 웨스트 파푸아와 가장 가까운 나라 중의 하나인 호주가 합의한 그 협정은 현재 진행형인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 전략을 간접적으로 도우며,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 파푸아인들을 억압하는데 이용될 위험이 내재해 있다.
두 나라의 협정은 웨스트 파푸아를 군사화시키려는 인도네시아의 전략을 즉각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으며, 이는 파푸아인들을 포위해 난민 신청을 위해 국외로 나올 자유마저 가로막는다.
특히, 이 협정에서는 호주와 인도네시아 양국의 영토와 주권,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그 어떤 대상의 행위에 대해 관계를 맺거나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분리주의의 행위가 언급되어 있다. 결국 호주에 있는 파푸아 난민들과 연대 단체들의 독립운동까지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두 국가의 안보협력은 식민지배의 합리화와 그 폭력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군사 재배치를 묵인하고, 아시아 전역의 소수 민족과 정치적 반대집단을 억압하는 대테러 전쟁의 수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 미국이 개입해 부시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유도요노와 호주의 수상 하워드와 만나 나눈 회담의 내용들은 다름아닌 호주, 인도네시아의 협정 체결에 대한 압력 행위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6년 호주와 인도네시아의 협정, 그리고 미국의 이해 관계는 40년도 더 된 1962년 뉴욕협정을 떠올리게 된다. 강대국들과 패권국들의 협정엔 ‘뭔가 특별하게 구린 것이 있다’. 그리고 그런 협정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바로 ‘우리’이며, 그런 협정으로 억압하려는 대상 역시 ‘우리’다. 그들이 그런 협정을 통해 상호 협력하고 의지할 때, 우리 역시 그들에 대항해 ‘연대’하고 억압자의 면피용 구실과 법적 근거들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
43년 이상 외롭게 싸워온 웨스트 파푸아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그들의 현실을 알아가는 것’, 이것이 그 연대의 첫 번째 행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2004년 12월 1일 처음으로 웨스트 파푸아의 독립선포일을 기념하기 위해 모닝스타(파푸아 국기)를 게양한 두 명의 양심수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국제적인 연대 단체들은 올해에도 공동 행동의 날인 12월 1일 국기게양을 이유로 10,15년 형을 받고 감옥에 있는 웨스트 파푸아의 양심수 유삭 파키쥐와 필립 카르마의 석방을 촉구하고 웨스트 파푸아의 자결권을 지지하는 시위와 다양한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같은 날 한국에서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앞에서 두 사람의 석방 촉구하는 1인 릴레이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은 파푸아 사람들의 호소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호소하는 ‘자유’를 지지해주는 것이다. 그 작은 시작이 웨스트 파푸아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중한 힘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그렇게 시작되는 연대, 그 힘을 믿어본다.
덧붙임
박의영 님은 '경계를넘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