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는 FTA 찬성론자가 아닙니다. 다만,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라는 강고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현실주의자’랄까요. 이야기는 결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공전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지더군요. FTA를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유일한 현실로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다시 한 번 볼리비아의 민중무역협정을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세계적인 흐름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무턱대고 개방을 막을 수는 없는 거 아니냐는 단단한 믿음조차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일 뿐, ‘개방’이나 ‘무역’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민중무역협정은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으니까요. FTA에 반대하는 것은 무역을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무역’을 반대하는 거죠. 그래서 미국과의 FTA를 막고, 그것과 전혀 다른 무역협정을 만들어낸 볼리비아의 사례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고맙습니다.
무역 자유화 정책을 지원하는 IMF 이후, 가내 수공업 형태의 볼리비아 의류 산업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훨씬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당시 볼리비아 정부가 저돌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었던 미국과의 FTA는 이러한 고통을 가중할게 뻔했죠. 사람들의 대대적인 저항이 있었고, 2005년 4월엔 볼리비아의 시민 사회 단체들, 소규모 제조업자, 지방의 농부들, 종교 단체, 그리고 광대와 배우들까지 모두 수도 라 파스(La Paz)에 모여서 정의와 연대에 기반을 둔 무역 정책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는군요. 그들은 싸움을 축제로 만들었고, 1주일 내내 다채롭고 다양한 전시부스, 길거리 극장, 음악이 도시를 가득 채웠대요. “자유 무역 반대! 우리의 삶을 지키자!” 놀랍게도 사람들이 거리에서 외치던 요구사항들은 새로 선출된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정부에 의하여 공식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민중무역협정은 무역과 투자의 목적이 기업의 이익과 시장의 전면적인 자유화가 아니라 모든 민중의 이익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물이나 전기와 같은 에너지를 공유하고, 작은 기업들을 보호하고자 하지요. 무엇보다도 그것은 한 나라의 경제성장 척도를 추상적인 수치로 가늠하는 서구식 발전주의를 거부합니다. 다국적 기업들이 아무리 성장한들 우리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요.
2006년 5월 볼리비아와 쿠바, 베네수엘라는 민중무역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연대와 상호 협력 그리고 민중들 사이의 원조는 기업의 이익과 시장 이득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한다는 신념, 환경에 대한 존중과 보전 속에서 사회 통합과 자원 산업화, 식량 안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기반으로요. 쿠바는 교육과 의료 부분의 지원을 제안했고, 베네수엘라도 기술적인 지원과 함께 탄화수소 부분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두 나라는 콜롬비아와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때문에 수출이 격감한 볼리비아 농산품을 구매하기로 했다는군요. 볼리비아는 이들 나라에 탄화수소를 제공할 것을 약속하고, 천연 의약품에 대한 경험과 연구 개발에 대하여 교류할 것을 제안했고요. 기업의 권리만을 확대시키는 불공정 무역협정을 맺는 대신 사람들의 삶을 꾸리기 위한 연대를 만들어낸 거죠.
FTA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것은 분명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FTA에 반대하는 것은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내미는 것과 전혀 다른 삶, 다른 미래를 꿈꾸고 모색하는 것이기도 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어쩔 수 없음’을 강요하는 이곳에서 다른 삶을 택할 권리를 위한 싸움. 그건 설령 FTA가 체결되더라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또다른 친구는 그건 자기 스스로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킬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일상의 모든 영역까지 파고들어 더욱 공고해진 대기업 자본주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그 체제를 전복할 힘은 일상에서부터 전혀 새로운 체제를 딛고 일어서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만 나올 것이라고요. 골목마다 있던 작은 구멍가게들이 사라지고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는 이곳에서 먹고, 자고, 입고, 소비하며 생활하는 모든 것을 바꿔내는 일상의 혁명에서만 가능하다고 말예요.
“미국식 생활방식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달콤한 편리함의 유혹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그것과는 완전히 갈라선 길로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럼으로써만 지금 여기서부터 다른 미래는 만들어지겠지요. 바로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미래를 선택할 ‘권리’는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구성해낼 ‘능력’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코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 단단한 현실을 돌파하고 허물어뜨릴 무기는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서만 벼려질 수 있는 것일 테니까요.
◎ 이 글은 ‘참세상’ 기사로 실린 닉 벅스턴(NICK BUXTON, 볼리비아에 거주하는 미국활동가)의 글과 진보넷 블로거 돕헤드의 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renewal_col&id=749
http://blog.jinbo.net/dopehead/?pid=541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renewal_col&id=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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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디디 님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는 '에프키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